흩어져야 사는 시대에도 비대면 대화로 말을 받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곁에 있을 땐 동상이몽이다가도 멀리 있으면 동병상련이 되는 걸까. “집에만 있으려니 죽을 맛이야.” “죽을 맛이 있다면 살맛도 있지 않을까.” 돌아오는 음성이 마치 그물에 걸린 듯하다. “잔소리가 장난이 아냐.” 어려운 문제집에도 뒤에는 해답이 붙어있다. “너만 그런 게 아냐.” 친구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스스로 확인한다. “집이 있으니까 집에 있을 수 있잖아. 아내가 있으니까 아내랑 다툴 수 있는 거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의 시). 뭐 이런 경지까진 못 가더라도 지금 내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간 정도로 설정하는 건 어떨까. 덤으로 노래 한 곡을 처방해준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오승근 ‘있을 때 잘해’ 중).
‘흔들리잖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도종환의 시). 살아있으니 말할 수 있고 비 새는 집이라도 있으니 자가(自家)격리,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있다’는 건 존재와 소유를 아우른다. 시간이 있으니 평소에 없던 궁금증도 생기나 보다. “근데 자넨 뭐하고 지내? 곤충채집은 들어봤어도 노래채집은 또 뭐야?” “곤충채집은 살아있는 곤충을 죽이는 일이지만 노래채집은 죽은 노래를 살리는 작업이야.” 해놓고 나니 맛있게 요리한 걸 알겠다. 사실 음식에만 맛이 있는 건 아니다. 음악에도 맛이 있다. 적시에 노래를 들려주고 적소에 노래를 배치하면 사는 맛이 절로 난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그럼 무엇이 살고 있었을까/ 땅속을 뒤져보면 화석이 많이 나오는데/ 아주 이상한 것만 있다네’(꾸러기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중). 기억의 단층을 더듬어보자. 긴 시간 동안 특정한 지역에서 살았던 게 시상화석이라면 삼엽충처럼 전 세계적으로 짧은 기간 살았던 것은 표준화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어디에 속할까. 이제부터 좋은 일이 생기면 이렇게 말하자. ‘뿌린 대로 거두는구나.’ 나쁜 일이 생기면 이렇게 예측하자. ‘이 또한 지나가겠지.’
친구는 그래도 옛날을 아쉬워하는 눈치다. ‘멀어져 가네/ 나의 꿈도 가네/ 잡을 수 없는 푸르른 날 모두 사라지네’(유열 ‘화려한 날은 가고’ 중). 그러나 화려한 날만 날인가. 화창한 날도 날이다. 화려한 날은 시들어도 화창한 날은 계속해서 핀다. 유열의 데뷔곡(1986 ‘MBC대학가요제’ 대상) 제목처럼 사는 것도 현명할 듯싶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음악동네 주민들에겐 저마다 화려한 날이 있다. ‘화려한 날은 가고’가 나온 1988년 여름 로스앤젤레스에서 ‘MBC대학가요제’ 미국 동부지역 예선이 열렸는데 자작곡 ‘스쳐 지나는 사연들’로 금상을 받은 이가 강수지다. 그 후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했는데 오늘은 ‘보랏빛 향기’ 대신 ‘흩어진 나날들’을 들어본다. ‘아무 일 없이/ 흔들리듯 거리를 서성이지/ 우연히 널 만날 수 있을까/ 견딜 수가 없는 날 붙들고 울고 싶어’. 시작은 이렇듯 쓸쓸했다. 우울함이 전염병처럼 번진다. ‘어두운 마음의 불을 켠 듯한 이름 하나/ 이젠 무너져 버린 거야/ 힘겨운 나날들’. 하지만 인생이 그러하듯 반전은 성찰이다. ‘그래 이제 우리는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모른 체 살아가야지’. 드디어 마지막 4단계에 와서야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을 깨우친다.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별이란 없을 테니까’.
노래의 기승전결이 4계절과 닮았다. 봄·여름(기승)이 지나면 가을·겨울(전결)이 온다. 중요한 건 겨울 다음이 다시 봄이라는 사실이다. 노래도 인생도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 부를 수 있을 때 부르자. 한번 불렀다고 다시 부를 수 없다면 그건 노래도 친구도 아니다.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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