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명이 검찰 수사관 사칭
감시용 ‘피싱 앱’ 설치 유도한뒤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며 협박
영상통화까지 동원한 새로운 수법의 ‘보이스피싱’에 1억 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가해 일당은 검사실을 위장한 사무실을 차려 놓고 화상 통화를 통해 피해자에게 검찰을 사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 여성 A 씨는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의 윤선호 수사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A 씨 명의의 여러 시중은행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고, A 씨가 대포통장을 양도한 가해자인지 정보를 도용당한 피해자인지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이 남성은 약식조사 녹취를 시작해야 한다며 A 씨가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하도록 한 뒤 “담당 검사를 연결해 줄 테니 무고한 피해자로 입증받으라”고 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성재호 검사’라는 남성에게 전화가 넘어갔고 이 남성은 A 씨의 통장이 ‘중고나라’ 등에서 벌어진 조직 사기에 사용됐고, 이 통장에 6400만 원의 피해액이 입금됐다고 주장했다. A 씨가 스스로 피해자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2주 뒤 법원에 나와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A 씨에 대한 압박은 ‘손정현 검사’라는 이에게 넘어갔다. ‘손 검사’는 A 씨가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계좌에서 현금을 찾아 금융감독원에 넘긴 뒤 자산을 합법으로 취득했음을 증명하는 ‘금융거래명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10여 명이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쉴 새 없이 지시와 협박을 이어갔다. 일당은 화상 공증을 한다며 검사실로 꾸민 장소에서 A 씨와 영상통화를 하고,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들의 낙인과 서명이 있는 가짜 공문을 제시하기도 했다. 치밀한 수법에 속은 A 씨는 결국 은행 10여 곳을 돌아다니며 1억4500만 원을 인출해 수차례에 걸쳐 ‘내사 담당 수사관’이라는 남성 등에게 전달했다. 이 돈은 어머니의 유산을 비롯해 A 씨가 7년 넘게 모은 청약통장과 적금, 보험 등 거의 전 재산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사흘 내내 A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휴대전화에 ‘법무부 공증 앱’으로 꾸민 피싱 앱을 설치하도록 해 A 씨가 일당과 연락하는 용도 외로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밤에도 취침 전까지 1시간마다 위치를 보고하도록 했다. A 씨는 결국 이달 9일 귀가 후 창문으로 몰래 빠져나와 이웃에게 ‘신고해 달라’는 쪽지를 건네고 나서야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동경찰서는 일당 중 1명을 경기 남부 모처에서 검거해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나머지 조직원들을 추적 중이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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