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에 이정표 같았던 형에게

요즘처럼 하늘이 높고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득한 저녁이 되면 가만히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처음에 실오라기 같던 생각이 자꾸 키워지면 옆구리가 가려운 듯, 재채기가 터질 듯 어쩔 수 없이 한바탕 회상에 빠지게 된다. 젊은 시절 일정한 직업도 없이 허랑한 때가 있었다. 아이들은 크고 아내도 돈 벌랴, 애들 키우랴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일정한 직업도 없었고, 그렇다고 일할 만한 여건을 갖춘 직장도 별로 없던 시절, 낮에는 인근 공사장이나 공공근로 현장을 다녔고 밤이면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는 회의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때는 왜 그리 허기는 빨리 오고, 술발은 오르는지 동네 슈퍼 툇마루에서 과자를 안주 삼아 술자리를 갖는 것이 즐거웠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고마움을 잊지 않기 마련이다. 당시 아무런 다그침이나 훈계도 없이 불러서 고기와 술을 사주던 형이 있었다. 물론 손에는 어김없이 책이 한두 권 쥐여 있었다. 기억건대 현암사나 태학사에서 나온 책이거나 남회근의 저작 등 고전 인문학류의 책이었다.

형은 술자리가 끝나면 책을 내게 안겨주며 ‘읽어보라!’ 한마디만 하는 것이었다. 술 사 먹을 돈도 없는 자가 책을 살 돈이 있었겠는가. 형이 주는 몇 권의 책도 그랬지만, 온기를 나눠주는 그 마음은 길을 잃고 헤매는 나에게 이정표가 돼주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체념에 물들기 쉬운 때였지만 그 따스한 손길은 내게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목이 마를 때 주어지는 물이 그 얼마나 소중한가. 그 물 한 모금으로 세상이란 사막을 건널 힘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형은 자신이 사는 모습으로 산다는 것의 엄중함과 존엄을 증명했다.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다니던 언론사가 IMF체제의 파도를 넘지 못해 기어이 구조조정에 이르게 됐을 때 그 업무를 맡게 된 형은 제 손에 피를 묻히고, 그 피가 마르기 전에 스스로 퇴사해버렸다. 그러고는 국내의 이곳저곳을 품을 팔며 떠돌았다. 그렇게 몇 년 자신을 스스로 유폐하더니 이제는 바닷가 어느 소도시에 정착해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지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책을 한 박스 보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귀거래사도 아니었을 테고 걸음마다 놓인 고통과 어려움이 그 얼마나 징검다리처럼 묵직했을까. 스스로 돌덩이를 가슴에 놓고 오래 둥글게 다듬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형이고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의 천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기실은 아침저녁으로 얼마나 많은 후안무치가 깝죽거리고 있는 세상인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것에 침을 튀기고 사람들은 아무 사연도 모르는 듯 박수를 치고 광분한다. 종종 진리는 이리 조용한 것에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고마운 사람이 많지만, 어찌 형을 그 첫 순위로 꼽지 않을 수 있을까. 그저 두루 고마울 뿐이고, 장대원 형의 건강을 빈다.

형을 사랑하는 동생 최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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