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암시 치료 받고 창작 몰입
초연후 美·유럽서 찬사 쏟아져
재기후 심리학 박사에 곡 헌정
러시아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사진)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4세에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라흐마니노프는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내며 10세의 나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낭비벽과 도박중독으로 가문의 모든 영지와 가산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두 명의 누나 엘레나와 소피아마저 병으로 사망하자 부모는 이혼하게 된다.
이 충격으로 라흐마니노프는 학업에 열중할 수 없어 결국 낙제를 하게 된다. 아들의 방황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라흐마니노프를 모스크바로 유학을 보낸다.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스승 니콜라이 즈베레프를 만나 시련을 딛고 다시 학업을 이어 나간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보였던 그는 음악원을 졸업하던 해인 1891년 18세의 나이에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단막 오페라 ‘알레코’를 작곡한다. 오페라는 호평과 함께 모스크바 음악원의 ‘황금메달’을 수상하게 되고 2년 뒤에는 볼쇼이 오페라단의 정식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다.
그가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때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여인 나탈리아 사치나가 있었다. 사치나는 고모의 둘째 딸로 라흐마니노프와는 어려서부터 함께 놀며 가깝게 지내던 사촌지간이다. 1897년 24세의 라흐마니노프는 매일 7시간 이상 작곡에 열정을 쏟아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 곡을 발표한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악평이 쏟아졌다. “지옥의 음악원에서나 환영할 만한 작품”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10개의 재앙”. 러시아 5인조의 멤버이자 비평가인 세자르 쿠이가 남긴 원색적인 비난으로 라흐마니노프는 기대만큼이나 깊은 좌절의 늪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이 시기에 러시아 정교회의 비난과 반대로 사치나와의 결혼마저 무산된다.
겹겹이 쌓여 온 좌절과 스트레스로 라흐마니노프는 결국 신경쇠약에 걸린다. 그리고 무려 4년이라는 긴 세월을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는 단 한 줄의 멜로디도 작곡할 수 없었다. 슬럼프의 늪에서 발버둥 치던 어느 날 권위 있는 심리학 박사 니콜라이 달을 찾아가 자신을 압박하는 모든 것을 털어놨다. 니콜라이 달은 ‘자기암시기법’ 치료를 했다. 치료는 1900년 1월부터 4월까지 진행됐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음악 창작에 몰입해 마침내 슬럼프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1901년 11월 9일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초연했는데, 이 곡으로 전 유럽과 미국에서 찬사를 받으며 재기에 성공한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을 깊은 슬럼프에서 건져 준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했다. 대면 접촉이 여의치 않은 요즘이다. 무기력해진 지금 긴 슬럼프의 끝에서 마침내 벗어난,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찬 작품은 큰 위안을 준다. 눈을 감고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들으며 자기암시를 걸어 보자.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피아노협주곡 제2번, 다단조 작품 번호 18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작이자 후기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삽입돼 지금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곡으로 2015년엔 KBS 클래식FM이 설문을 통해 선정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 1위에 뽑히기도 했다.
보통의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가 먼저 서주를 하고 피아노 독주가 이어지지만, 이 작품은 특이하게 피아노 독주로 협주곡을 시작해 승리의 기쁨이 가득한 선율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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