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에 최선을 다하겠다.”

미국 타임지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소감을 묻는 기자 질문에 짧고 명료하게 말했다. 정 청장은 타임지 발표가 나온 시점에도 여느 때처럼 코로나19 대응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시각과 안에서 일하는 상황은 천양지차다. 세계는 정 청장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실제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 청장은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역학조사관 인력 확보 문제다. 1차 대유행 초반부터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를 추적할 역학조사관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고, 정 청장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방역 전문가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의사결정권자는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확진자가 주춤하자 ‘K-방역’ 이름표를 붙인 성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결국 역학조사관 인력 확보는 뒷전으로 밀렸다.

방역 정책 결정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본부장인 중대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본부장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정 청장은 건의자일 뿐 결정권자가 아니다. 이에 대해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됐지만 정 청장의 권한은 여전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확진자 발생이 60명대로 줄어들자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음날 확진자는 110명으로 늘었고, 24일에는 125명을 기록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방역 성공의 결과물을 차지하고 싶은 것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지적을 충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외국처럼 질병관리청장을 최고 방역지휘관으로 앉히지는 못하더라도 섣부른 낙관론으로 방역망에 구멍을 내지는 말아야 한다.

최재규 사회부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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