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산업부 차장

지난 15일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찾았다. 일주일 뒤 이번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김 위원장을 찾아갔다. 이어 23일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정구용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장,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이 한꺼번에 김 위원장에게 달려갔다. 경제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과거 외환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못지않은 경영 위기가 도래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 시국에 정부와 여당이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밀어붙이겠다고 나서니 기댈 곳은 제1 야당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단체 최고위급 인사들의 하소연에도, ‘김종인 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한술 더 떠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기업규제 3법에 대해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이 어떤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용인하고 지나갔다”며 “경제 상황을 정상적으로 바꾸기 위해 법안들을 제출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예 “기업은 어떤 제도가 추인되면 그 제도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기업은 정치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그는 2013년 1월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그 실천방안’ 특별강연에서도 “정치가 경제세력 위에 있지 않으면 나라가 절대로 정상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요즘 경제가 부진하다며 경제민주화 같은 소리는 때려치우고 경제성장에 힘을 모으자는 얘기를 한다”며 “그렇게 하다가는 또 한 번의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코로나19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 죽이기에 동참한 배경에 ‘경제세력’, 즉 기업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혐오가 깔려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기업에 우호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견고한 지지층 30∼40%가 있는 한, 그들에게는 지지층 입맛에 맞는 행동만 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선명성을 버리고 기업을 옹호하는 것은 집권 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달라야 한다. 여당이 손을 놓았으면 야당이라도 경제를 살펴야 할 것 아닌가. 여당이 이념에 경도돼 있으니, 야당은 경제 현실을 보며 차별화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김종인호 야당은 민주당 따라 하기에 바쁘다.

김 위원장 측에서는 젊은 층 유권자를 잡으려면 기업 때리기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대적해야 하는 현 집권세력은 선명성을 무기로 대중을 선동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갖춘 집단이다. 이미 그들에게 선점당한 이슈를 뒤늦게 열심히 따라가 봤자, 잘해야 민주당 2중대가 될 뿐이다. 제1야당마저 기업 죽이기에 부화뇌동함으로써 코로나19 국면에 가까스로 버티던 기업이 결국 무너지고, 그 결과 소득 감소와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때 가서 ‘국가 운영의 책임은 집권당에 있다’고 발뺌할 것인가. 한반도선진화재단은 24일 브리핑 자료에서 “혼돈시대의 보수 정당이라면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과 국민의힘이 귀담아들어야 할 고언이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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