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외교·군사용어

북한 핵위기, 한·일 역사 갈등 등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외교·군사 분야 용어도 외국어 표현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가뜩이나 국가 간 조약이나 무기 이름 등에 영어 약자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는 만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번역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 핵위기와 관련해서는 특히 영어 표현이 남발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나자 ‘노딜(no deal)’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결렬’이나 ‘합의 실패’ 정도로 쓸 수 있는데도 굳이 영어 표현이 여기저기서 쓰였다. 실무 협상을 진행하는 대표단을 의미하는 ‘워킹그룹(working group)’은 ‘실무 협상단’으로 바꿔 쓸 수 있다.

북한처럼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는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은 ‘제3자 제재’로 쓸 수 있다. 북한 핵무기가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할 때 사용되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는 표현은 ‘국면전환자’나 ‘국면전환 요인’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로드맵(road map)’은 ‘단계별 이행계획’으로 바꿀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는 ‘정권 교체’로, ‘컨틴전시플랜(contingency plan)’은 ‘비상 계획’으로, ‘레드 라인(red line)’은 ‘허용 한계선’으로, ‘워 게임(war game)’은 ‘모의 군사 연습’으로 각각 번역할 수 있다.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통신수단을 의미하는 ‘핫라인(hot line)’은 ‘직통 회선’이나 ‘비상 직통 전화’로, 북한 핵시설만 콕 집어 폭격하는 계획을 외과수술에 비유한 ‘서지컬 스트라이크(surgical strike)’는 ‘정밀 타격’으로 바꿔 쓸 수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경제 보복에 나섰을 때 자주 거론된 ‘화이트리스트(white list)’는 ‘수출 심사 우대국’으로, ‘세이프가드(safe guard)’는 ‘긴급 수입 제한’으로 바꿔 쓰면 더 이해하기 쉽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쓰이는 ‘린치핀(Linchpin)’이라는 표현은 ‘핵심축’ 정도로, 미·일 동맹을 설명하는 ‘코너스톤(corner stone)’은 ‘주춧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문화일보·국어문화원연합회 공동기획]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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