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란 무엇인가’ 출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양극화 심화, 정책 책임이 큰데
재벌에 떠넘기고 정치적 이용
주주·국가의 부당 개입 차단
기업 ‘법인’이 만들어진 실체
법인 경영의 목표는 장기 성장
주주가치 선택하는 것에 불과
소수 주주 무조건 착하다 주장
美 대주주 없는 회사 0.2%뿐
대주주가 오너처럼 행동하면
法의 칼에 뚫린다는 것 경계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잘 키우려는 고민은 갈수록 실종되고 대신 알을 빨리 낳으라고 거위를 짓누르거나 배를 갈라 서둘러 잡아먹으려는 약탈적 압력만 비등하고 있다.” 최근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내놓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기업규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에 대해 재계의 우려가 쏟아지는 지금의 현실은 신 교수가 언급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 경영인들조차 기업활동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신 교수의 신간은 어쩌면 ‘이론적 신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기업을 ‘장기번영 공동체’로 정의했다. 외부의 부당한 개입을 막고 ‘경영수탁자’들이 장기성장이라는 본질적 과제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법인’ 형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인은 주주와 국가가 기업 경영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경제의 활력도 이 명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봤다. 싱가포르에 있는 신 교수를 지난 25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기업을 둘러싼 갈등이나 반기업정서 등은 기업이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인식이 만들어져야만 건설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오랜 기간 연구한 것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에 관해서는 최소한 100년 이상의 논쟁이 쌓여 있다. 이 논쟁을 종결지으려는 시도였고 나름대로 성공했다 자평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을 내기 위해 대부분 잘나가는 기업은 법인을 통한 주식회사이고, 이 회사들이 시장경쟁에 처해 있다는 현실을 기업 이해의 공리(公理)로 삼았다. 이 두 가지 공리에서 출발해 상식선에서 따라가 봤을 때 기업이 운영되는 원리를 8대 기업명제로 정리했다. 기업 관련 논쟁과 정책을 이 명제들과 연결했고 이를 또 기업성장 스토리와 결합했다. 이런 책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최초라고 생각한다.”
―책의 키워드 중에 하나가 법인과 법인격이다. 개념으로 출발했지만 사회적 실체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법인을 통한 주식회사 없이 상상할 수 없다. 상법과 회계제도도 법인 중심으로 운영된다. 법인 개념이 생긴 시기는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법인에 입각한 기업이 실제 만들어진 것은 베네치아 왕국 때니까 최소한 5∼6세기에 걸쳐 확립된 사회적 실체다. 반면 주주가치론은 1980년대에 시작돼 40년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이해관계자론은 더 짧다. 그런데 그 유치(幼稚)한 이론들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확립된 법인을 자꾸 밀어내며 ‘껍데기’ 취급하고 있다. 역사와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이념적 기업관들이다.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주주가치론을 무분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나.
“미국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미국을 피상적으로밖에 모른다. 주주가치론이 경영학계, 경제학계, 법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국 기업법은 주(州)의회에서 만들고 주법원이 판결을 내린다. 기업법은 법인실체론에 입각해서 운영된다. 법원에서 막히니까 주주가치론자들은 연방정부 산하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로비해 주주행동주의를 강화해왔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걸 제대로 보지 않고 미국 전체가 주주가치론으로 가 있고 한국도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상법은 유럽 대륙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상법 체계를 따랐기 때문에 법인실체론으로 돼 있다. 그런데 법의 집행자인 검찰까지 법을 무시하고 주주가치론을 마구 내세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배임으로 기소한 것도 ‘주주가치론’을 무분별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잘못 알고 있다기보다 사실을 왜곡하는 부분이 더 큰 것 같다. 검찰은 삼성물산이 보유하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 주주배당을 하면 주주가치를 더 높일 수 있었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다면서 회사에 대한 배임이라고 기소했다. 그러면서 ‘미국법에서는 이 같은 경우도 광범위하게 배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법에 그런 조항은 없다. ‘적법한 범위에서 어떤 목적과 수단도 추구할 수 있다’는 광범위한 자유주의적 문구만 있을 뿐이다. 판례도 법인실체론에 입각해 있다. 주주 손해를 회사 배임으로 적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소를 합리화하기 위해 선진국 미국에서 그렇게 하니까 따라야 한다고 갖다 붙인 것 같다. 사실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인을 통해 경영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장기성장이다. 주주가치를 얼마나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는 그 과정에서 기업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사안이다.”
신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파라마운트 대 타임’ 판결에 주목했다. 타임과 워너브러더스의 합병 시 주당 70달러 정도로 논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파라마운트가 끼어들어 주당 200달러까지 줄 수 있다고 했다. 타임 주주들 입장에선 3배 가까이 받을 수 있었는데 타임 이사회가 ‘타임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슷한 기업 문화를 갖는 워너와 합병해서 장기성장전략을 취하는 것이 낫다며, 파라마운트의 제의를 거절했다. 델라웨어 법원이 ‘적절한 판단’이라고 타임 이사회의 손을 들어줬다. ‘주주가치’를 내세우며 기업을 약탈하던 기업사냥꾼 시대를 종결지었던 기념비적 판결이다.
―정치권에서도 지금 기업규제 3법과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야권지도자가 경제민주화를 주창했던 분이라 기업인들도 어려워한다. 이 형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 걸음 물러앉아 생각하는 문화가 실종됐다. 법안들이 실제로 경제에 좋은 건지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무조건 편가르기로 싸우며, 그 싸움에 동원되는 파편적 이론들만 돌아다녀 세상이 혼탁해지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대표적이다. 양극화의 주범이 재벌이니까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고 내세운다. 한 걸음 물러나 이 주장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한국은 재벌 중심으로 성장하던 경제개발 기간 내내 세계에서 분배가 괜찮은 나라였다. 1990년대 재벌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융성기에는 분배가 오히려 더 좋아졌다. 세계화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임금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한국의 양극화는 어떤 지표로 보더라도 1997년 외환위기 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나빠졌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벌개혁을 했는데도 나빠졌다. 주주자본주의에 입각해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법안에는 주주자본주의를 더 강화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 원인과 처방이 이렇게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앞뒤 따지지 않고 재벌을 혼내주고 싶거나 재벌에 압력을 가해 뭔가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슬로건으로 경제민주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잘못으로 벌어진 양극화를 재벌에 떠넘기는 측면도 있다.”
―어떤 법안이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나?
“감사 선임 시 대주주 권한을 3%로 제한하는 것이다. 대주주는 나쁜 사람이고 소수주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게 사실인가? 소수주주 중에는 헤지펀드, 단기투기세력 등이 다 들어와 있다. 그 사람들이 정말 회사를 위해 감사를 선임할까? 대주주 권한을 3%로 제한하면 누가 대주주 되겠다고 하겠나? 헌법 위반 가능성도 있다.”
―대주주와 소수주주 가운데 누구에게 권한을 많이 주느냐에 대해 답이 나온 것 같다.
“주식회사 제도에서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 대주주가 소수주주에 비해 권한을 많이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이번 책에서 권리와 책임의 상응을 ‘기업명제 8’로 제시했다. 대주주에게는 권리와 함께 책임도 따른다. 반면 소수 주주들에게는 권리만 있지 책임이라는 것이 없다. 언제든 ‘먹튀’할 수 있다. 기업이 잘못돼도 주가에서만 손실을 볼 뿐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업은 장기 번영공동체다. 잠깐 있다 탈퇴하는 사람을 공동체 맴버라고 할 수 있겠나. 권한을 많이 줄 수 없다. 대주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전문경영체제가 이상형인 듯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경영체제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조차 숫자로 따지면 대주주가 없는 주식회사가 0.2%가 안 된다. 앞뒤 안 따지고 소수주주들이 자기 권리만 주장하는 경향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책에서 언급한 가상기업이 이른바 다국적 비즈니스그룹으로 성장한 뒤 본사 해외이전을 옵션 중 하나로 검토하는데, 실제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상속세 65%를 다 내면 2세 승계조차 어렵다. 그럼 대주주 지분을 누가 사가겠나. 돈 있는 해외 경쟁사 아니면 사모펀드·헤지펀드다. 이들은 회사를 길게 보며 끌고 가지 않는다. 기존 전문경영인 중에서도 장기성장에 대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1차적으로 쫓겨나간다. 해외 이전은 기업의 장기번영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주주만이 아니라 전문경영인들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임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가족경영인들의 이기적 욕심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기업 엑소더스가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정부가 국내에 길게 보며 사업할 수 있는 여건을 잘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법인실체론’이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게 아니냐는 물음에 “대주주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법인실체론에 맞춰 경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정부나 주주로부터의 부당한 개입에 맞설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책에는 “대주주가 오너처럼 행동하면 법의 칼에 뚫릴 수 있다. 한국에서 대주주 경영인들이 범법자가 돼 버린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대주주들을 위한 뼈있는 경고이기도 하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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