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현장의 느낌도 실었어요”

‘변신’은 배우에게 있어 숙명과도 같다. 배우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변신을 강요받는다. 새로운 캐릭터를 잘 해내면 변신에 성공했다는 찬사를 받지만, 종전과 비슷한 연기를 하면 성공과 관계없이 ‘자기 복제’라는 비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없듯 날마다 변신에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변신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자칫 캐릭터의 본질을 놓칠 수가 있다. 그만큼 변신은 어렵고 고달픈 일이다.

23일 종영한 tvN 드라마 ‘악의 꽃’(극본 유정희, 연출 김철규)에서 열연한 배우 서현우(사진)는 이 같은 변신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는 도현수(이준기)의 친구 김무진 역을 맡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창조했다.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스릴러 장르 안에서도 댄디한 패션을 보여주고, 상대역인 장희진과의 은근한 멜로를 소화하며 온탕과 냉탕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주연급 배역으로 출연한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게다가 상대 배우와 멜로 연기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장희진 씨가 중심을 잘 잡아줘 몰입할 수 있었고, 평소 90㎏대로 통통했던 체중을 70㎏ 정도로 꾸준히 감량한 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김철규 PD가 조연과 단역에 머물던 서현우를 주요 역할로 발탁한 것은 그의 유연함 때문이었다. 한 작품 안에서도 변화무쌍한 김무진은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있어야 했고, 거기엔 서현우가 적임자였다.

“감독님이 무거울 수 있는 테마 속에서 숨통을 틔워줬으면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유연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엔 제가 맡을 캐릭터의 증조부까지 전사(前史)를 만들어 연구했지만 이번엔 ‘조금은 설정을 빼자, 그래서 현장에서 느낌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다양한 성격을 내비치는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주목받는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서현우는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실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해왔다. 콕 집어주지 않으면 같은 사람으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천의 얼굴’을 보여왔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데뷔한 지 10년이지만 서현우가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작품은 2018년의 화제 드라마 ‘나의 아저씨’다. 박동훈(이선균)이 이끄는 안전진단 3팀의 송 과장으로 나와 늘 박동훈 편에 서는 의리 있는 부하직원을 연기했다. 8 대 2의 단정한 가르마와 짙은 청색의 작업복 재킷을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회사원 같았다. 배우라기보다 실제 인물을 데려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엔 국민 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배심원들’에서 피고인 역을 맡아 ‘보통사람’ 송 과장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웠다. 화상으로 얼굴과 손이 일그러진 섬뜩한 분위기의 피고인이었다. 영화의 흥행 성적은 신통하지 못했으나 서현우가 연기한 피고인 연기는 인상 깊었다.

올해 초 개봉한 화제작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그를 눈여겨봐 온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작품에서 서현우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전두혁으로 출연했다. 외모부터 감탄이 흘러나오게 했다. 앞이마가 훤히 드러난 헤어스타일에 단정한 군인의 모습. 대사는 몇 마디 없었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로 또 한 번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실존인물이어서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상황과 인물만 봤습니다. 관객이 잘 아는 인물이니까 말투를 흉내 내기보다는 드라마의 흐름에 집중했습니다. 특수 분장이 있었지만 실제로 삭발하고 한 겁니다.”

서현우의 꿈은 원래 군인이었다.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멋진 군복을 입고 항해하는 것을 꿈꿨다. 그래서 고교도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떨어진 기숙학교인 한일고(충남 공주)에 진학했다.

“그런데 1학년 때 연극 공연을 보고 빠지고, 2학년에는 아예 연극반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배우를 하겠다는 것보다는 그냥 연극하는 게 재미있고 좋았어요. 자연히 성적은 추락했고, 고3 때 뒤늦게 공부해서 국민대 영문학과에 들어갔죠. 그리고 우연히 대학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손님으로 온 연극배우들을 보면서 고교 때 즐거웠던 연극반 생활과 담당 선생님을 떠올렸어요. 그 선생님에게 안부 전화를 드린 게 제 인생 진로를 바꿨습니다.”

연극반 담당 선생님은 한일고를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선생님을 통해 서현우는 한예종을 알게 됐고, 다시 시험을 치러 04학번으로 늦깎이 입학했다. 당시 한예종에서는 고교 사제지간에서 나란히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 두 사람의 인연이 유명했다. “그 선생님은 다시 학생들을 지도하러 학교로 되돌아가셨습니다. 지금도 가끔 전화 드리면서 늘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변신이 기대되는 서현우의 차기작은 영화 ‘유체이탈자’다. 올해 말이나 내년쯤 개봉을 준비 중인데 서현우는 여기서도 ‘백 상사’라는 심상치 않은 배역을 맡았다. 백 상사는 군인 출신의 용병이다. 액션이 많다. 주인공 윤계상과 대적하는 ‘빌런’이기도 하다.

“이질감이 없는 배우, 그 삶의 공간에 그냥 놓여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악의 꽃’의 멜로 연기가 좀 아쉬워서 다음엔 현실적인 코믹 멜로에도 도전해보고 싶네요.”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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