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은 또 한 번 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고, 인간 이준기를 한 층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배우 이준기가 tvN 드라마 ‘악의 꽃’을 마친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이준기는 극 중 연쇄살인마의 아들 도현수 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호평받았다.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을 가진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그의 연기력은 분명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 “뻔한 사이코패스 연기를 뛰어넘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악의 꽃’을 마친 이준기와 서면 인터뷰를 나눴다. 이하 일문일답.

#작품을 마친 소감을 말해달라.

“매 작품이 그러했지만 이번 ‘악의 꽃’은 끝나고 나니 유독 복합적인 감정이 많이 느껴져요. 작품을 완주했다는 안도감, 초반에 느꼈던 무게감을 무사히 완결로 승화시켰다는 성취감, 그리고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달려온 모든 분들을 떠나보냈다는 헛헛함까지. 게다가 종영 후 바로 인터뷰까지 진행하니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느껴지면서 더욱 만감이 교차하네요. 참 외로우면서도 많은 것들에 감사한 지금입니다.”

#백희성과 도현수, 사뭇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할 때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은?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리액션에 상당히 공을 들였어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현수이기에 작은 표현부터 리액션 하나하나가 씬 자체에 큰 힘과 설득력을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저 혼자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되는 부분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작가님을 비롯한 현장에서 저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카메라 감독님까지. 그리고 배우 한 분 한 분과 계속해서 서로의 생각들을 나눈 거 같아요.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너무 뻔하거나 단조롭게 표현되어 도현수란 인물이 단순한 무감정 사이코패스로만 보여질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쓰고 집중했죠.”

#금속공예가, 남편, 아빠 등 다양한 면모를 지닌 캐릭터 구축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다면?

“금속공예가로 살아가는 백희성의 모습은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야 했어요. 그래서 촬영 전 유튜브로 연기에 참고할만한 공예 작업 영상들을 찾아보며 미리 상상해 두었고, 실제 금속공예가분을 만나 짧게나마 공예가의 손길이 느껴질 수 있는 디테일을 배웠죠. 한 가정의 따뜻한 아빠로서의 모습은 사실 애드리브가 많았는데, 감독님께서 그냥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게 믿고 맡겨 주셨어요. 남편으로서의 모습은 아무래도 문채원 씨와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하면서 캐릭터들을 만들어 나갔어요. 채원 씨는 굉장히 섬세해서 감정적으로 집중하는 것에 큰 힘을 가진 배우예요. 그래서 제가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채워줬죠. 덕분에 마지막에 가서는 차지원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아파트 난간 씬, 물고문 씬 등 고난도 액션이 많았는데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나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평소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그래서 힘들고 지치기보다는 ‘내가 얼만큼의 동선을 만들고 액션을 취해야 시청자분들이 이 씬에서 오는 감정과 느낌을 오롯이 받아 들이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이번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존에 제가 좋아하는 액션을 10분의 1정도로 줄이자고 다짐했었어요. 제가 평소에 보여드리던 액션들은 상당히 많은 합이 있어 화려하거나 거칠거든요. 하지만 그런 액션이 이번 작품에서는 도움이 되질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액션보다는 감정에 더 집중했던 거 같아요. 처절하게 내몰리는 신(scene)들의 경우에는 대역 없이 직접 몸으로 들이받고 던져지고 부서지고 하면서 저 스스로뿐만 아니라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도 더 몰입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과 명대사를 꼽아달라.

“저는 정말 다 좋았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그럼에도 하나를 꼽자면 현수가 처음으로 감정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 신을 그려내기까지 저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정말 고민이 많았었거든요. 리허설을 할 때조차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고민하면 할수록 막히는 부분이 생겼어요. 완급 조절에 실패해 시청자분들을 납득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이어오던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깰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에는 처음 제가 그 회차 대본을 받았을 때의 느낌대로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아이가 처음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뜨리는 듯한 모습으로요. 그렇게 수많은 고민과 상의 끝에 만든 씬이에요. 찍고 나서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게 기억나네요. 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마지막 회에서 현수가 지원이에게 해주는 ”내가 더 잘해줄게요. 내가 더 좋아해 줄게요“라는 대사예요. 기억을 잃은 현수가 가슴속 어렴풋이 남아있는 과거 지원이 내밀었던 따뜻한 사랑을 되돌려주는 거죠. 두 사람의 새로운 사랑과 인생을 뜻하는 거 같아서 현장에서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요.”


#‘악의 꽃’은 이준기에게 어떤 의미였나

“항상 작품에 임할 때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로서 가장 최선의 이야기들을 만드는 데에 일조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이번 작품은 유독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이렇게 잘 완주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마음 뿐이에요. 감독님과 작가님을 비롯해 모든 스태프분들, 배우분들과의 소통과 교감이 있어 가능한 결과이기에 더욱 행복감을 느끼고 있죠. 사실 저는 삶에 있어서 내가 성장하고 잘 되는 것보다는 내가 꿈꾸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충만함과 행복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저의 삶의 의미이자 중요한 가치구요. 그렇기에 이번 ‘악의 꽃’은 또 한 번 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고, 인간 이준기를 한 층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또 생각합니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 인사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해 달라.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시국이기에 미약하게나마 즐거움과 기쁨,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어요. 특히 저는 직업이 배우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으로 즐거움을 드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성실하게 몸과 마음 잘 준비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음 작품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안진용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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