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추석 연휴 내내 가수 나훈아 씨가 큰 화제였다. 온라인 백과사전에 그의 가족 사항으로 ‘테스형’이 추가됐다가 삭제되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신곡에서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고 유머러스하게 불렀던 것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반영된 해프닝이었다.

KBS가 연휴 기간 두 차례 방송한 쇼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시청률이 이례적으로 높았다. 힘든 시절을 보내는 우리 국민을 위로하고 싶어 처음으로 무관중 공연을 한 나 씨의 진심이 통한 결과였다.

그가 공연 중에 한 말들도 큰 울림을 줬다. “KBS가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위정자(爲政者)는 정치인을 뜻하는 말인데, 나 씨는 거짓으로 정치를 하는 위정자(僞政者)로 언급했다. 정치인에 대한 그의 인식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이런 발언들은 우리 국민의 저력을 상찬하는 맥락에서 나왔기에 정권 비판이 주된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도 여느 권력과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 씨의 신곡 ‘테스형’이 공교롭게도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 씨의 소크라테스 발언과 겹쳐서 회자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유 씨는 우리 국민을 사살한 북한 정권 비위를 맞추는 발언을 했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소크라테스에 비유했다. 유 씨의 이런 언행은, 나 씨가 노래 ‘테스형’에서 “세상이 왜 이래”라며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후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진의가 무엇이든지 정권을 호위하는 자신을 고대 철학자와 동격화한 것은 오만한 궤변이었다.

나 씨는 스스로 ‘흘러가는 노래를 부르는 유행가(流行歌) 가수’라고 했다.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픈 허욕이 없음을 강조한 것인데, 그 말 속에 음악으로 당대인들을 위로해왔다는 자부심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나 씨의 ‘느끼함’이 싫다는 이들도 그가 우리 시대와 동행한 가객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때 라이벌로 운위됐던 남진 씨가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대중 친화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면, 그는 드물게 등장하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가 넘치는 쇼맨십으로 가요 리사이틀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캐릭터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행운이다.

공연 후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데서 알 수 있듯 나 씨의 삶과 노래에서 가장 큰 화두는 ‘자유’이다. 그가 정부에서 훈장을 준다는 것을 마다한 것도 예술인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훈장을 받으면 그 값을 해야 하니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에 나 씨의 참여를 원했으나, 그는 불참했다. 나 씨도 남북 화합 잔치에 기여하고 싶었으나 북한 당국이 공연에 간섭할 것이 뻔한 탓에 그게 싫어서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정치 쇼에 예술인들을 불러대는 현 정부 핵심들이 그걸 통해 무얼 느꼈을까. 북한 전체주의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리가 정말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자유임을 새겨야 한다면, 순진한 소망일까.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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