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⑥ 제우스와 모모스의 비방
부러움의 감정, 삶의 활력 얻고 자존감 높여… 혐오는 타인을 무조건 경멸대상으로 비하
배타적인 민족주의· 정치 이데올로기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정치 현실 벗어나야
올림픽의 발원지가 그리스라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리스인들은 유별나게 경쟁과 경연을 즐겼다. 신들조차 경쟁의 욕망이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여신들을 상대로 한 일종의 미인대회 심사위원으로 선택받는다. 그는 여신들의 뇌물 공세에 현혹된 나머지 본래 경연대회의 취지에 맞지 않는 불공정한 판정을 내린다. 지혜의 전수를 약속한 아테나도, 세계의 지배권을 약속한 헤라도, 세계 최고 미녀의 사랑을 구해주겠다고 한 아프로디테를 당할 수 없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승자로 선언하고 아프로디테는 그 대가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를 납치해 트로이로 데려온다. 파리스는 자신을 강하게 해줄 권력도 지혜도 마다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선택한다. 그리 사려 깊은 결정은 아니었지만, 파리스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선택도 아니다.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는 파리스를 낳았을 때 이 아이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거라는 예언을 듣고 그를 내다 버렸고, 버려진 파리스는 암곰의 젖을 빨며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애정 결핍 속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파리스가 자신을 사랑해줄 미녀를 선택한 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아프로디테의 무리한 선물은 그리스군의 총공격을 불러오고 불길한 예언대로 트로이는 멸망한다.
제우스, 프로메테우스, 아테나의 우화에서는 신들이 자신의 창조물을 가지고 발명품 경연대회를 벌이는데 그들은 이번에도 문제가 있는 심사위원을 고른다. 모모스는 이름 자체가 비난을 의미하며 무엇이든 흠잡고 조롱하고 폄하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신이다. 그러니 그는 파리스처럼 뇌물에 끌리는 불공정한 심판관은 아니지만, 가장 우수한 것을 선정하는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서는 전혀 적합하지 못하다. 자기 작품의 우수성에 대한 찬사를 기대하고 모모스를 불러온 신들은 트집 잡는 듯한 그의 악의적 평가에 기분만 잡치고 만다.
이솝 우화는 무조건 악평을 하는 모모스의 심리를 시샘으로 규정한다. 시샘이란 무엇인가? 시샘은 부러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이와 동일한 감정은 아니다. 부러움의 감정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어떤 가치를 지닌 타인에 대한 감정, 타인과의 비교에서 일깨워지는 결핍의 감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러움이 전적으로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 우리는 장차 추구해야 할 목표를 발견하고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언젠가 타인처럼 원하는 가치를 획득할 거라는 기대가 행복감을 유발하고, 여기서 내가 소망하는 미래를 이미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이 파생되기도 한다. 그것은 소망을 실현한 사람을 보는 데서 오는 대리만족이거나 그러한 사람에 대한 어떤 존경의 감정이다. 타인은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적 자아의 자리에 있다. 요컨대 부러움은 타인을 통해 유발된 결핍의 감정이 어떤 기대와 존경, 가상적 만족과 같은 긍정적 감정에 감싸여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누군가를 부러워하려면, 그가 나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이미 다른 면에서 나보다 앞서 있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이나 나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혹은 연장자인 사람에게서 내가 소망하는 가치가 있음을 확인할 때, 나는 특별한 저항감 없이 그를 부러워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나와 사회적으로 대등하거나 그 이하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서도 부러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점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에 특정한 면에서 타인의 우위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로 인해 나의 자존감이 무너질 염려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타인과의 비교에서 상대적 결핍을 자각하고 나 자신이 타인에 대해 열등한 위치로 떨어진다고 느낄 때, 그리고 이를 용납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 결핍감은 시샘이 된다. 시샘하는 자는 ‘내가 A에 비해 빠질 게 없는데, 내가 A보다 우월한 사람인데…’ 하는 식의 생각에 빠져들고, 이는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상대에게 빼앗겼다는 느낌으로까지 발전한다. 타인은 내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 자아가 아니라 꺾어 눌러야 할 라이벌, 적대적 경쟁자로 나타난다. 시샘하는 자는 라이벌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한편으로는 라이벌이 나보다 앞서 있고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음을 느끼기에 그를 모방해 따라잡으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라이벌이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그를 헐뜯고 부정하려 한다. 부러움의 감정이 단순하고 진실하다면, 시샘은 복잡하고 비틀어져 있다. 시샘은 부러움보다 더 강력한 성취욕을 자극할 수 있지만, 라이벌을 따라잡을 희망을 전혀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부정하고 파괴하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모모스의 시샘은 세 신의 발명품에 대한 일방적 폄하로 나타난다. 모모스는 흠이 있어서 흠을 잡는 게 아니라 흠을 잡기 위해서 흠을 찾아낸다. 그러다 보니 발명품에 대한 모모스의 평가는 일면적이고 자기모순을 일으킨다. 황소가 앞을 보면서 뿔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머리에 달린 뿔이 왕관처럼 황소에게 아름다움과 위엄을 부여한다는 것을 무시한다. 사람들의 나쁜 의도를 알기 위해 마음에 창문을 달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에는 부응하지만 사람들이 과연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원할까라는 물음에는 답을 주지 못한다. 귀찮은 이웃을 피하기 위해 집에 바퀴를 달아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한 곳에 묶이지 않는 자유의 꿈을 표현하지만 굳건한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집 본연의 기능과 양립할 수 없다. 더군다나 가슴에 창을 내야 한다는 주장과 귀찮은 이웃에게서 벗어날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은 상충한다. 하나는 인간에 대한 전면적인 사회적 통제를 주장하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간섭에서 얼마든지 달아날 수 있는 유목적 자유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세 신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데 몰두하는 모모스는 기준의 일관성 같은 것엔 신경 쓰지 않는다.
시샘 때문에 무조건 흠잡기에 몰두하는 모모스에게 분노한 제우스는 그를 올림포스에서 쫓아낸다. 제우스는 모모스가 자신의 멋진 작품에 경탄하기를 원했지만, 모모스는 제우스의 우월함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도리어 황소를 아둔한 공격수로 묘사하며 제우스의 체면을 구겨놓고, 심지어 제우스가 저지른 설계상의 결함을 바로잡을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우월한 위치에 오르고자 한다. 신 중의 신인 제우스는 모모스가 자신을 라이벌로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에도 꽤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제우스가 모모스에게서 올림포스 거주권을 박탈함으로써 그의 신적 지위를 격하한 것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모모스가 시샘 때문에 좌충우돌식으로 트집을 잡고 다른 신들의 발명품을 폄하했다고 해서 제우스가 추방이라는 극단적 대응을 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모모스의 비방은 전체적 맥락으로 보면 일면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있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시샘에서 나온 모모스의 마구잡이 비방이 괘씸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극이 돼 더 탁월한 발명품이 창조되지 말란 법도 없다. 아주 먼 훗날 캠핑카가 발명되고, 목표물을 스스로 찾아가는 눈 달린 미사일이 개발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빅데이터 분석 기법이 발전해가는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기이하게 들렸을 모모스의 제안에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대단한 통찰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시샘은 경쟁을 활성화하고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부러움이나 시샘과 비슷하지만 구별해야 할 감정이 있다. 하나는 자랑스러움이다. 자랑스러움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감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성취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그 타인을 거의 나 자신과 동일시할 때 그러하다. 부모는 자식의 성취를 부러워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한다. 스타의 세계적 성공을 보며 팬들은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여기서 부러움의 감정에 본질적인 부분, 즉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타인을 볼 때 느끼게 되는 결핍에 대한 의식은 사라진다. 결핍을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자아가 거대한 타인의 그늘 속에 흡수돼 거의 윤곽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부러움이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타인을 향한 동경이라면, 그 거리를 지우고 자아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부러움은 자랑스러움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그 감정 속에서 타인의 성취에 편승하고 안주한다.
그 반대편에 혐오가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그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혐오는 타인을 우리의 확고한 편견 속에 가두고 그를 현실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혐오 감정의 필터 속에서 타인은 무조건 무가치하고 경멸할 만한 대상으로 비하된다. 시샘꾼은 라이벌의 우월성을 인식하기에 그를 미워하는 것이지만, 혐오는 타인에 대한 인정을 알지 못한다. 시샘하는 모모스는 비록 트집을 잡기 위해서일망정 다른 신들이 만든 황소와 인간, 집을 자세히 관찰한다. 반면 혐오하는 자는 타인에 대한 무지와 맹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자만에 빠진다. 자랑스러움과 혐오는 우리를 강고한 자아의 껍질 속에 고정시키고, 타인과 교류하며 발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전적으로 자랑스러움과 혐오의 수사학에 의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자기 확신과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부정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정치 현실에서도 자랑스러움과 혐오의 감정만이 넘쳐난다. 상대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 속에 서로 경쟁하는 정치를 상상해본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모모스(Momos) : 그리스 신화에서 불평과 비난의 신. 악의를 가지고 남을 비난하고 풍자하며 조롱하는 것에 대한 의인화이다. 밤의 여신 닉스가 혼자서 낳은 자식이라고도 하고, 닉스와 어둠의 신 에레보스의 결합으로 태어난 자식이라고도 한다. 모로스(운명), 타나토스(죽음), 케레스(죽음), 아파테(사기), 모이라이(운명의 여신들), 오이지스(불행, 고초), 오네이로이(꿈), 필로테스(우정), 에리스(불화) 등과 형제자매다. 모모스는 다른 신들을 지나치게 헐뜯고 폄훼하다 결국 제우스에 의해 올림포스 산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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