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초기의 주택시장 고민은 주로 하우스푸어 문제였다. 수도권 주택 가격이 너무 떨어지고 거래도 되지 않으니 과도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는 문제가 심각했다. 이처럼 주택 매매가격이 장기 하락 추세를 보이는 데도 전세가는 계속 상승했다. KB주택가격 통계를 보면 서울시 전세가는 2008년 10월에서 2014년 말까지의 75개월 중 불과 2개월을 제외하고 전부 플러스(+) 상승률을 보였다.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주택의 가격이다. 전자는 자산으로서의 주택 가격이고 후자는 주거 서비스로서의 가격을 반영한다. 이 두 가격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했다.
당시 집주인 입장에서는 저금리 때문에 보증금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줄어서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했다.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도 줄어서 미래 자본이득을 바라보고 현재의 임대료 수입이 낮은 것을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수요자들 역시 집값 상승의 기대가 낮아서 집을 사기보다 전세를 선호했다. ‘누가 집 사나, 전세 살면 되지’였다. 주택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었으니 전세가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 아파트 임대계약에서 반전세를 포함한 월세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이 추세에서 중요한 요인은 미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다. 이론적으로 보면,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면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아진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때 집주인으로서는 전세를 놓으면서 집을 유지하는 것보다 집을 팔고 은행에 맡기는 게 더 낫다. 게다가 집주인은 감가상각과 세금까지 부담한다. 이런 이유로 매매가격이 안정되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아지고, 가격이 오를 때 그 비율이 낮아진다. 집값 상승 기대가 낮아지면서 전세가가 점점 매매가에 근접해가고, 월세의 비중이 높아졌던 것이다. 이후 2015년에 주택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자 전세의 비중이 다시 늘어나고 전세가도 안정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임대시장이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전국의 전세가가 12개월째 상승하고 있고, 지난 9월의 수도권 전세가 상승률은 5년3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세종시는 올해 들어서만 전세가가 26.2% 폭등했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초과해서 자칫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이른바 ‘깡통전세’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주택 전월세 급등 추세가 원룸, 오피스텔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매매가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전세가만 높아지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주택시장을 둘러싼 거시적인 환경과 무관하게 임대시장의 교란 요인들이 현재 전세난의 주범임을 말해준다. 세입자들이 계약갱신 청구권을 행사함에 따라 매물이 출회되지 않고, 3기 신도시 분양을 받기 위한 대기 수요도 늘었다. 집주인들은 4년치 전세를 미리 올리고자 하며, 일부는 아예 임대시장을 떠났을 것이다. 임대인의 대다수는 다주택자일 텐데, 각종 세금이 너무 오르니 전월세를 올려서 손해를 줄이려 한다.
이런 대부분의 시장 교란 요인이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들이 돌고 돌아서 결국은 서민의 주거를 위협하고 있다. 반(反)시장적인 우격다짐 정책들을 쏟아낼 때 언론과 전문가들이 걱정하던 목소리를 듣는 체도 하지 않았던 대가를 치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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