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지구 위협하는 ‘근지구 천체’ 연구
직경 1㎞ 넘는 ‘전지구적 위협’천체는 99% 목록화… 300m∼1㎞ 이하는 64% 완성
20m 직경의 2013년 첼랴빈스크 운석, 히로시마 원폭의 33배… 공중 폭발 덕에 피해 적어
유엔 산하 IAWN·SMPAG가 소천체 추적·감시하며 자료수집·분석·배포
생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검붉은 용암이 팥죽처럼 끓고 독성 기체가 코를 찔렀을 아득한 과거에 지구를 융단 폭격했던 천체들이 과연 그 불지옥 같은 곳에 생명의 씨앗을 뿌렸을까?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소행성과 혜성을 포함한 소천체가 지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미국 남서 연구소의 해럴드 레비슨(Harold F Levison) 박사는 소천체 연구로 그 지식 격차를 메울 수 있다고 단언한다.
“바닥에 쓰러진 피해자보다는 벽에 뿌려진 혈흔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더 귀중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곱씹어 보면 적절한 비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행성은 소천체들이 충돌, 파괴, 합체 과정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뒤,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녹아 뒤섞이고 오염돼 원재료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오늘날 소천체들은 행성들이 완성되고 남은 찌꺼기로, 장구한 시간이 흘렀지만 비바람과 화산, 생태계의 변화를 겪지 않아 시원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70억 년 전
2019년 말, 나사(미 항공우주국)는 운석에서 당 성분을 검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연구팀은 ‘머치슨’과 ‘NWA 801’에서 아라비노스, 자일로스, 리보스를 찾았다. 리보스는 우리 몸에서 감초격이다. 리보핵산(RNA)과 DNA 구성 성분의 하나로 유전 정보를 전달하고 단백질 제조의 핵심을 맡기 때문이다. 이 운석들은 각각 70억 년 전과 45억 년 전에 태어났다. 그 아득한 과거의 산물에 이처럼 손상되기 쉬운 분자가 남은 것은 놀랍다. 운석에서 아미노산이 발견된 적은 있지만, 유전 물질의 일부가 검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는 RNA가 DNA보다 먼저 진화해 초기 생명은 RNA로 자기 복제했으며, 소천체가 생명 탄생에 기여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가 됐다.
◇ 40억 년 전
그러면 소행성과 혜성이 어떻게 지구의 풍경을 바꿔 놨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40억 년 전, 지구 대기는 이산화탄소와 질소로 가득 차 있었다. 2020년 ‘네이처’에는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한 논문이 실렸다. 과학자들은 실험 장치로 이산화탄소와 질소가 주성분인 지구 대기와 바다를 재현했으며, 철과 니켈로 된 탄환(금속질 소행성)을 쏴 글리신과 알라닌 같은 아미노산이 생성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제로 소행성이 방아쇠를 당긴 것일까?
◇ 4억6600만 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공룡 멸종 4억 년 전이었다. 생물은 대부분 바다에 살았고 척추동물이 출현하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이즈음 지구 역사상 중요한 사건 하나가 터진다. 오르도비스기 초중반, 지구는 기온과 습도가 적당했지만 그 시기가 끝날 무렵 갑작스러운 변화가 닥친다. 무슨 영문인지 지구는 급속도로 냉각돼 빙하기를 맞았으며, 해양 생물의 85%가 돌연 자취를 감춘다. 단초는 소행성대에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이 빈번했다. 과학자들이 증거를 찾았다. 스웨덴 키네쿨레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서 발견된 130여 개 운석에 단서가 남았는데 소행성 파편(운석)이 해저 퇴적암에 묻혀 화석화된 드문 예다. 운석은 화석에 박제된 채 발굴됐는데 분석 결과, 깨진 직후 지구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소행성이 산산조각이 나 뿌려진 먼지는 태양풍을 타고 지구로 유입돼 햇빛과 열기를 차단, 해수면이 내려갔으며 고위도 지역에서는 대륙 빙하가 세력을 키웠다. 그 증거는 ‘혈흔’처럼 선명하게 남았다. 2019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이러한 내용이 소개됐다.
◇ 6600만 년 전
6600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총알 24배의 속도로 지구를 강타했다. 그리고 단 몇 시간 만에 초음속 충격파가 고목들을 쓰러뜨렸고 열 폭풍은 숲을 모조리 불태웠다. 지진파는 쓰나미를 일으켜 200m가 넘는 물의 장벽이 내륙으로 밀어닥쳤으며, 밀려온 바닷물은 미시시피 강 하구 300㎞ 안쪽까지 범람했다. 소행성은 지각을 뚫어 맨틀을 후벼 팠고 솟구친 먼지와 화산재가 광합성을 멈춰 세웠으며, 먹이 사슬이 끊겨 종의 3분의 2가 종말을 맞게 된다. 이때 충돌구가 패인 지역을 멕시코만이라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단 하나의 개체도 살아남지 못했다. 멸종의 상징적인 피해자는 공룡이었지만, 반대로 수혜자도 있었다. 이러한 참극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뒤, 멕시코만은 다시 생명으로 넘실댄다. 주인공은 마이크로박테리아라는 세균. 화산재와 먼지가 걷히면서 햇볕이 들었고 바다에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해 산소를 뿜어냈다. 세균이 산소와 양분을 공급한 덕분에 이전 세상과 다른 생태계가 모습을 갖춰 갔다.
주먹만 한 작은 포유류들도 용케 살아남았다. 그 일족은 진화를 거듭해 현생 인류가 된다. 세월이 흐른 뒤, 인류는 그 한복판에 시추공을 뚫어 수천만 년 전의 ‘혈흔’을 찾아낸다.
◇ 6년 전 진주 운석
2014년 3월 9일 저녁, 남한 전역에서 화구를 봤다는 제보가 쏟아졌다. 이 유성체는 수도권 120㎞ 상공에 진입해 대전 인근 85㎞ 높이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경남 산청 25㎞ 상공에서 폭발, 진주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분석 결과, 그 모체는 소행성대를 공전하다 궤도를 벗어난 근지구 천체(NEO)로 밝혀졌다. 지구 주변을 돌던 소행성과 혜성 조각은 대기권에서 떨어지며 불타는데 금성보다 밝은 것을 화구라고 한다. 나사 사이트에는 2020년 10월 현재 화구 839건이 공개돼 있으며, 검색해 보면 0.1킬로톤(㏏)급은 680건, 1㏏급 94건, 10㏏급 13건, 100㏏급은 2건이 나온다. 무슨 뜻일까? 제2차 세계 대전 때 떨어진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 원폭의 폭발력을 TNT로 환산하면 15㏏, 21㏏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2012년, 외교부는 10㏏급 핵 테러 피해를 예측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사건이 발발할 경우, 사망 26만 명, 경제 피해 1575조 원, 같은 사건이 부산항에서 일어난다면 사망 4만6000명, 경제 피해는 723조 원으로 평가됐다. 논문 자료와 비교하면 진주 운석의 모체는 1m보다 작은 데다 폭발력도 0.1㏏에 못 미쳤던 것 같다.
◇ 7년 전 첼랴빈스크 운석
진주에 운석이 떨어지기 1년 전인 2013년 2월, 첼랴빈스크를 포함한 8개 지역에서 폭발 화구가 목격됐다. 화구는 일시적으로 태양보다 밝았으며, 목격자 중에 일부는 열기를 느꼈다고 증언했다. 당시 충격파는 1만5000㎞ 떨어진 남극에서도 검출됐다. 첼랴빈스크 시내에서는 건물 7200채가 파손됐는데, 대부분은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수준이었다. 깨진 유리와 다른 이유로 상처를 입은 1491명의 시민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모체는 20m급 근지구 천체로 판명됐으며, 폭발 에너지는 400∼500㏏, 히로시마 원폭의 26∼33배에 달했다. 하늘이 도왔을까? 운석은 30㎞ 높이에서 폭발한 뒤, 도심 70㎞ 밖 호수에 떨어져 피해가 최소화됐다. 게다가 80㎞ 거리에 6기의 원자로와 핵폐기물 시설이 있었지만, 다행히 비껴갔다.
◇ 9년 뒤 암흑을 지배하는 뱀의 사신
2029년 4월 13일 금요일, 350m급 근지구 천체가 정지 위성보다 낮은 3만1000㎞ 상공을 통과한다. 최접근 시간은 14일 6시 46분, 한국은 토요일 아침이다. 소행성에는 암흑을 지배하는 뱀의 사신, ‘아포피스(Apophis)’라는 끔찍한 이름이 붙었다. 발견 직후, 이름에 걸맞게 충돌 확률이 2.7%까지 치솟았는데, 초기 자료만으로는 궤도 오차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여러 천문대에서 집중 추적해 재계산한 결과, 확률은 0으로 떨어졌다. 2029년 아포피스는 지구를 지나면서 궤도가 변하리라 예측된다. 동시에 천체 양쪽 끝에서 느끼는 중력의 차이, 즉 조석력이 발생한다. 그 결과, 최접근을 전후해 자전축이 틀어지고 회전 상태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더 흥미를 끄는 것은, 아포피스 표면에서 사태가 일어나 지형이 들썩이고 돌과 흙을 뿌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일부 국가는 직접 탐사를 준비하고 있다. 미래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 극소의 확률에 대비한다!
유엔은 1999년, 근지구 천체 충돌 위협의 실체를 인정한 데 이어, 2014년에는 국제소행성경보네트워크(IAWN)라는 가상 네트워크와 우주임무기획자문그룹(SMPAG)이라는 실무 그룹을 승인, 회원국들의 협력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협력과 경쟁을 바탕으로 근지구 천체를 추적 감시하며 한 곳에서 자료를 수집, 계산, 배포한다.
현재 알려진 근지구 천체 중에 ㎞급 천체(전 지구적 위협)는 99%, 300∼1000m급 천체(대륙 초토화)는 64%, 100∼300m급 천체(국지적 피해)는 16%가 목록화됐다고 평가한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 연구원
■ 용어설명
근지구 천체(Near Earth Object·NEO) : 태양을 공전하는 소행성과 혜성 가운데 태양 최접근 거리가 1.3천문단위(1천문단위는 지구∼태양 평균 거리)보다 가까운 것을 말한다. 이 중 추정 지름이 140m보다 크고 지구 궤도와 천체 궤도가 가장 접근했을 때 0.05천문단위보다 가까운 소행성을 지구위협 소행성(Potentially Hazardous Asteroid·PHA)이라 부른다. 2020년 10월 현재 알려진 NEO와 PHA는 2만3996개, 2104개다.
IAWN와 SMPAG : 국제소행성경보네트워크(International Asteroid Warning Network·IAWN)는 지구 충돌이 예측되는 NEO의 발견, 추적, 계산, 경보 발령을 담당하는 가상 네트워크다. 우주임무기획자문그룹(Space Mission Planing Advisory Group·SMPAG)은 실현 가능한 피해 최소화 대책과 궤도 변경 임무를 제안하는 실무 그룹이다. 유엔의 승인 아래 활동하며, 한국천문연구원이 2개 조직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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