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국회의원 떨거지들에게 갖은 곤욕을 당하면서 오늘에까지 그 구차한 명맥을 부지해….’ 요즘 얘기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쯤 전인 1962년 7월 17일 자 어느 일간신문 가십 기사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 이야기로 혼동되는 것은,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정신 나간 여권 떨거지들’을 언급한 때문일 것이다. 권력 주변의 정치인을 떨거지라고 하는 표현이나 정치 현실이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방증이다.
떨거지란, 일가 친척붙이에 딸린 무리나, 한통속으로 지내는 사람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 어원과 관련, 한 무더기를 뜻하는 ‘떨기’라는 명사에 사람이나 동물을 나타내는 접미사 ‘-어지’가 붙은 형태로 보는 추정설도 있다. 그러나 ‘어지/아지’는 강아지·망아지·송아지처럼 주로 대상을 축소할 때 사용하는 접미사(축소사)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음운 이론을 떠나 의미상으로는 ‘∼에 딸린 사람’ 곧 ‘딸린+어지’의 변형어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상상일 뿐 어원으로 정립되기엔 논리가 불충분하다. 떨거지에는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 곧 걸인이라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드물게 떨거지를 사람 아닌 사물을 지칭한 용례도 있다. ‘케케묵은 한시 나부랭이나 또는 태서(泰西·서양) 명시 떨거지를 몇 개 나열해 보려고 했으나….’ 1938년 3월 5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안회남의 편지글 ‘시골에 계시는 R형에게’가 잘 보여준다. 그러나 떨거지는 주로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 권력 추종자나 모리배 또는 한솥밥 먹는 군식구 길카리(가깝지 않은 친척)를 일컫는다. 작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 5’에서는 몸통 아닌 깃털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시정에 뒹구는 하속배(下屬輩) 떨거지들과 비견할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워낙에 닳아빠진 떨거지 인생들이 어느 결에 요령을 터득해 가지고 남의 장단에 춤추며 손해 보기는 싫다는 판국인지라” 하는 황석영의 ‘객지’에서는 모리배로 전락하는 사례를 엿볼 수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똘마니’ 설전이 벌어지더니 떨거지까지 등장했다. 떨거지들이 설치는 사회는 건강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떨거지들의, 떨거지들에 의한, 떨거지들을 위한 정치’가 횡행하면 나라의 주인 국민은 궁민으로 전락해 떨거지 아닌 알거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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