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출 최종 라운드에 올랐다. 1·2차 예선에선 유 본부장의 실력이 주효했지만, 오는 19∼27일 열리는 3라운드 본선에선 대한민국의 외교력이 발휘돼야 할 시기다. 법치와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한 대한민국의 통상장관은 보호주의와 국가적 차원의 무역 보복을 배격하는 자유 무역의 수호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국제사회에서 확산되는 중국 피로증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 지원으로 당선된 에티오피아 출신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중국의 압박에 밀려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자 역풍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WTO가 친중계에 의해 장악될 경우 제2의 WHO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지난 3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사무총장 선거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당초 중국 출신 왕빈잉(王彬穎) WIPO 사무차장이 총장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미국 측 지지를 얻은 다렌 탕 싱가포르 특허청장이 당선, 지난 1일 6년 임기를 시작했다. 중화권 국가라 해도 ‘법치’를 존중하는 싱가포르 인사가 낫다는 판단이다. 유엔 산하 15개 전문기구 중 중국인이 수장인 곳은 식량농업기구(FA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4개다. 여기에 중국 입김이 센 아프리카 출신이 사무총장인 WHO와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만국우편연합(UPU)까지 합치면 중국 영향권 기구는 절반에 육박한다.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때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핵심인 미·중 지지를 모두 얻어야 했던 시기다. 다행히 당시는 미·중 간 북핵 공조가 유지되던 시기여서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중 무역 전쟁이 패권전쟁으로 번진 상황이다. 자유무역 룰을 관리하는 심판자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명실상부하게 그런 규칙을 지키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아시아국들과 연대해 지지를 얻어내는 게 핵심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에게 ‘WTO 공조’를 청한다면 한·일 관계에 의외의 훈풍이 될 수 있다. 중국 편에 설 인사보다는 미국 동맹국으로 함께 가야 할 한국의 후보를 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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