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 마이클 본드 지음, 홍경탁 옮김 | 어크로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이 말은 얼마나 위험한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는 장소도 알지 못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신생아나 알츠하이머병 환자일 확률이 높다.

과학, 심리학, 행동과학을 넘나들며 최신 연구를 소개해온 저자는 공간 능력, 즉 우리 뇌 속에 있는 ‘인지 지도’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아니 ‘섬뜩하게도’ 알츠하이머병이 공격하는 뇌의 부위가, 이 ‘인지 지도’가 형성되는 장소와 같다는 것. 따라서 이 병에 걸리면 집에서도 길을 잃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또, 길을 잃을 때 우리 뇌는 우울증 환자와 유사한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길을 잘 찾는다는 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 있다는 것으로 이어지며, 사회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치매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은 ‘길 찾기’ 능력이야말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된 근원이라고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식량의 위치를 알아내고, 적을 파악하면서 이 능력을 발달시켰고,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협력하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유전자 속에는 ‘탐험가의 DNA’가 심어져 있다는 의미인데, 왜 어떤 이들은 신생아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도 아닌데 ‘여긴 어디’를 반복하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 안에 있는 지도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길치’도 노력으로 나아질 수 있다고 독려한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험로가 예상된다. 스마트폰 지도를 끄고, 뇌에 풍경 정보를 입력하는 훈련(인류가 수만 년 동안 해온 그것)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 이 의지를 끌어내기 위해 책은 알츠하이머병과 우울증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지 모른다.

책은 현대인들이 공간 관련 능력을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우리의 ‘길 찾기 능력’이 위협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내비게이션 음성 안내를 따르며, 가는 길 도중에 무엇이 있는지 알 필요도 없고, 어느 길을 선택할지 고민도 하지 않는다. 행동반경도 줄었다. 책은 셰필드대 연구를 근거로, 3세대 만에 사람들의 행동반경이 30분의 1로 줄었다고 설명한다.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에 성장한 할머니는 혼자 3∼4㎞를 걸어가 친구들을 만났으나, 2015년 열 살이 된 손자는 혼자 가장 멀리 간 곳이 100m 거리의 친구 집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을 끊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저자는 지도나 표지판에 의존하려거든, 차라리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이는 길 찾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활동이라는 데 기인한다. “길을 묻는 것은 어떤 곳의 문화에 다가가는 훌륭한 방법이다.” 또한, 가끔 길을 잃는 것도 해마(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부분)를 깨우는 좋은 훈련이며, 새로운 발견도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여행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직 탐험해야 할 세상이 저 멀리에 있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372쪽, 1만6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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