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선 ‘종교와 영성’. 팬데믹 시대가 끝나고, 그 이후의 ‘세계’가 몇 번 지나간다 해도, ‘정답’을 구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종교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을 뿐. 사유의 여정에 가이드가 되어 줄 영화와 책을 살펴본다.

이안 감독의 2012년 개봉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맨부커상을 수상한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이다. 오로지 ‘이성’만을 믿는 무신론자 아버지와 달리, 세 개의 종교를 받아들인 주인공 소년 ‘파이’가 호랑이와 함께 바다를 표류하면서 겪는 모험담이자 성장기이다. 개봉 당시 종교 영화인가 아닌가 라는 분석과 의견이 분분했던 작품인데, 사실 영화는 종교뿐 아니라 철학과 문학을 아우르며 신의 존재, 자연의 섭리, 실재와 환상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섣부른 찬양도 비난도 없이, 성숙한 시선으로 종교와 영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책 ‘신과 인간에 대하여’(동녘)는 2017년 작고한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바르샤바 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스타니슬라우 오비렉의 대담집. 낙관적 무신론자인 바우만과 회의적 유신론자인 오비렉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신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해 논한다. 책은 근본주의 신앙의 문제점과 그 사유의 한계를 지적하고,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종교’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천한 소설 ‘세상의 주인(Lord of the World, 메이븐)’. 종교 서적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책은 1907년 로버트 휴 벤슨이 쓴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이다. 저자의 종교적 정체성이 강하게 반영되며 ‘신성(神性)’에 대한 위대함을 지나치게 강조한 부분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하는 주제의식을 보이고 있다. 당시는 경제성장, 기술발전, 산업혁명, 무신론 등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고, 인간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찬양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코로나가 맹목적인 물질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한 ‘경고’라고 할 때, 113년 전 쓰인 이 ‘미래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내에는 올해 처음 번역돼 출간됐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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