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영주권 포기 독도가 본적
명예군수로 매년 3~4회 방문
뗏목 항해·릴레이 수영 종단
“비자거부뒤 일본 절대 안가
작은 사랑이 모여 큰 힘 돼”
“독도는 애국심의 원천이며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가수 정광태(65·사진) 씨는 오는 25일 ‘독도의 날’ 120주년을 맞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도는 영토 이상의 상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38년 동안 독도 홍보대사와 독도지킴이 활동을 해온 그는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며 “정부가 역사적인 자료와 외교력을 동원해 더욱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독도의 날은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조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세상에 알린 것을 기념해 제정한 날이다. 그는 23~27일 경주 첨성대 앞에서 사진작가 5명과 함께 독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는 행사를 연다.
현재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명예회장 겸 고문으로 활동 중인 그는 1999년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독도로 본적을 옮긴 후 독도 명예군수가 됐다. 매년 3~4회, 지금까지 100회 이상 독도를 방문했다. 한창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1984년 처음으로 독도에 갔을 때 독도경비대에서 예포까지 쏘며 환영해줬다. 독도를 몸으로 지켜낸 독도의용수비대와 홍순칠 대장, 최초의 주민인 최종덕 씨 등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독도 노래를 부른 사람으로서 독도를 지키는 일에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2000년 독도수호대 청년들과 뗏목을 타고 울릉도~독도를 항해했고 2004년에는 28시간 동안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회원을 포함해 60명 릴레이 수영으로 울릉도~독도 종단에 처음 성공했다. “중학생부터 장애인, 60대까지 참여한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우리 영토이기에 자유롭게 헤엄쳐서 독도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요.”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하지 않은 사연도 들려줬다. 1996년 프로그램 제작진과 함께 비자를 신청했는데 명확한 설명 없이 혼자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유가 뻔했기에 일본대사관에서 불같이 화를 내고 서류를 찢고 나온 뒤 일본을 절대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원래 개그맨이었던 그는 1982년 KBS ‘유머 1번지’에서 박문영 PD가 작사·작곡한 ‘독도는 우리 땅’을 처음 선보였다. 그 당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터졌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따라 부르며 반응이 정말 뜨거웠다. 그러다 영화 기생충에서 개사돼 ‘제시카 송’ ‘제시카 징글’로 불리며 재조명받고 해외에서까지 인기를 끌게 됐다. “세계인들이 SNS에서 원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 기쁘고 뿌듯했어요.”
그동안 공연뿐 아니라 군부대에서 ‘나라사랑 독도사랑’ 강연과 청소년 대상 강연 등을 해온 그는 “독도 수호를 위해서는 말보다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적 행동이 모여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독도 사랑 활동을 계속 펼치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독도를 알리고 지키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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