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신 작가 하진의 ‘전쟁 쓰레기(War Trash)’는 6·25전쟁을 중국적 시각에서 그린 소설이다. 중국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1949년 황푸군관학교 2년생이던 유우안은 1951년 춘제를 앞두고 당의 명령에 따라 기장과 신분증을 둔 채 집을 떠나 의용군 부대의 일원이 됐다. 3월 압록강을 넘었는데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데다 방한복과 식량이 부족해 전투 이전에 3분의 1은 낙오하거나 사망했다. 미군은 “마오쩌둥(毛澤東)이 보낸 대포 밥”으로 조롱했다.
우안이 미군에 잡힌 뒤 “죽었다면 순교자가 될 텐데 포로로 살아 돌아가면 어떻게 하나”라며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6·25 때 의용군 형식의 중국군은 18만 명이 전사·실종됐고 우안 같은 포로 귀환자는 6000명이다. 애먼 전쟁에 동원돼 큰 희생을 치른 것인데 참전자들은 예우를 받지 못했고, 포로 출신들은 전쟁쓰레기로 불리며 수난을 겪었다. 이들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직후인 1980년에야 복권됐다.
중국 정부는 전사자를 영웅으로 떠받들면서 귀환자는 냉대했다. ‘잊고 싶은 전쟁’을 되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6·25를 ‘승리한 전쟁’으로 둔갑시켜 매년 10월 25일을 ‘항미원조(抗美援朝)’의 날로 기념한다. 특히, 올해는 7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와 영화까지 만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진은 “중국이 의용군 형식으로 파병한 것은 정규군을 보내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과 전면전을 피하려는 의도”라면서 “공산당은 미국의 만주 점령 공포 때문에 참전한 것”이라고 썼다. 6·25 참전은 미국의 중국 본토 공격을 우려한 방어적 개입이었다는 얘기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지난 19일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정의의 승리”라고 했다. 6·25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발발했고 중국은 북한의 침략 전쟁을 지원한 것인데 평화를 깬 집단을 도운 것이 어떻게 평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고 어떻게 정의의 승리인가? 시 주석은 “항미원조 정신으로 모든 적을 이겨내야 한다”고도 했다. 한·중 수교 후 28년 지났는데 중국 지도부는 여전히 70년 전의 냉전 시각으로 한국과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정부라면 이런 심각한 6·25 왜곡을 비판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침묵한다면,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아류 중국몽에 빠져 있음을 시인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