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욱 前 삼성종합기술원장이 본 이건희 회장
1988년 ‘제2의창업’ 선언때
창의적 조직·인간 존중 강조
지금은 경영계 메시지 없어져
1993년 ‘新경영 선언’ 당시
임원 200명 68일 현장 돌아
초석 놓듯이 쌓아 만든 기업

손욱(75·사진) 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은 자신이 곁에서 지켜본 이 회장에 대해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근원적인 일을 하나하나 초석 놓듯이 쌓아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기업인”이라고 평가했다.
손 전 원장은 특히 “이 회장이 쓰러진 2014년부터 경제계 내에서 메시지가 없어졌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넘으려면 ‘지금부터 뭘 해야 한다’는 큰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방향이 보이질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삼성전관 사장, 농심 대표이사 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 등을 지낸 손 전 원장은 창업주인 이 선대회장과 이 회장의 핵심참모로 일한 삼성그룹 역사의 산증인이다. 특히 손 전 원장은 지난 1993년 이 회장이 신경영을 외친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수행팀장을 맡는 등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삼성의 경영철학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생생히 지켜봤다.
손 전 원장은 2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할 때만 해도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인 ‘관리의 삼성’ 형태로 충분히 그룹이 발전할 수 있었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계에 봉착했다”며 “이 회장이 결국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제2의 창업 선언을 했는데 그때 경영이념으로 강조한 것이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 세 가지였다”고 말했다.
손 전 원장은 이 회장이 경영이념을 제시한 배경에 대해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회장이 갈수록 시대 변화가 빨라지고, 고객마다 다른 것을 요구하는 새 물결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기업에도 구성원들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신바람 나게 일하는 자율형 조직문화가 정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인 구글이 지금 강조하고 있는 자율경영과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존중의 개념을 이미 1980년대에 넓은 안목을 통해 머리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원장은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이 회장의 ‘통 큰’ 일화도 소개했다. 손 전 원장은 “이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갑자기 삼성 관계자 200여 명을 해외로 불러 68일간 유럽과 일본의 산업 현장을 돌게 하고 거기서 그 사람들이 어떤 조직문화로 일류가 됐나를 공부시켰다”며 “200명 넘는 임원이 회사 업무도 제쳐 두고 68일 동안 세계 초일류 산업 현장에서 토론하고 배우도록 한 것은 결국 자율경영을 할 수 있는 리더들을 키워내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손 전 원장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문이 지금처럼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이 회장의 ‘기술 중시’ 경영이념이 밑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손 전 원장은 “예컨대 현재 1메가바이트(MB)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고 하면 4MB 혹은 16MB까지 연구하느냐, 아니면 64MB까지 선행해서 연구하느냐를 고민하게 되는데 대부분 회사에는 3개 제너레이션(세대)을 연구하는 팀이 있었다”며 “그런데 이 회장은 ‘그래서 어떻게 일류가 되겠나. 우린 한 세대를 더하자. 정 안 되면 교육이라도 시키자’고 강조하며 4세대를 연구하는 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삼성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고 돌이켰다. 손 전 원장은 “삼성 임원들이 신라호텔 화장실로 견학을 많이 갔다”며 “이 회장은 평소에도 ‘공장만 빼꼼하게 잘 만들지 말고 회사 화장실도 호텔처럼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이는 사원들의 생활 공간이 좋아야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이 만드는 제품도 일류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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