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색만 내고 자기과시 일삼는
‘화학비료형 인간’도 조심해야
‘거미줄 인간, 화학비료형 인간, 퇴비형 인재….’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생전에 “삼성 회장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람을 키우고 쓰고 평가하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1997년 출간된 자작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사진)에서는 이 회장의 인재론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이 회장이 생전에 쓴 유일한 에세이다.
이 회장은 ‘큰 사람 작은 사람’이란 글 서문에서 “경영자는 자기 일의 반 이상을 인재를 찾고 인재를 키우는 데 쏟아야 한다”며 “아무리 우수한 사람도 엉뚱한 곳에 쓰면 능력이 퇴화하는데, 한번 일을 맡겼으면 거기에 맞는 권한을 주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친으로부터 기업은 곧 사람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適材)을 키워, 필요한 때(適時)에, 필요한 곳(適所)에 쓰는 일이야말로 기업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라면서 자신의 인재상을 풀어놓았다.
사람 유형 중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을 부지런하게 찾아 연줄을 만드는 ‘스파이더맨(거미줄 인간)’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이들은 실력보다 연줄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이런 유형은 파벌을 조성해 인화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자리가 높아지면서 권위주의에 젖어 ‘관료화된 인간’에 대해 이들 밑에서는 큰 인물이 자랄 수 없고 자율과 창의가 꽃필 수 없다고 평가했다. ‘화학비료형 인간’도 경계해야 할 유형이라고 꼽았다. 이 회장은 “조직에는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퇴비형 인재’도 많지만, 생색이나 내고 자기를 과시하는 데 열심인 화학비료형 인간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해바라기형’ 예스맨과 관료화된 인간, 화학비료형 인간의 공통점도 분석했다. 이 회장은 “이들은 능숙한 말솜씨로 여러 가지를 말하는데 대개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화법을 즐겨 쓴다”면서 “‘내가 하겠다’가 아니라 ‘사원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꼬집었다.
회사 생활을 똑같이 하면서도 직원들이 ‘핵(核)’과 ‘점(點)’으로 나뉘는 경우도 자주 봤다고도 서술했다. 이 회장은 “회사에 꼭 필요한 핵이 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며 “누구의 지시를 받기 전에 먼저 일을 찾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눈가림이나 생색을 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만큼,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책임을 다한다”고 덧붙였다.
조직이 힘들 때 결국 도움이 되는 인재로는 소신파를 지목했다. 이 회장은 “예스맨은 문제를 숨기고 본질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주장을 펴는 소신파는 고집이 세서 타협은 어렵지만 어려울 때 힘이 된다”고 말했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이 회장 별세 후 중고서점가에서 한때 30배 넘게 폭등해 19만 원에 거래되는 등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발행 당시 판매가는 6500원으로 현재 절판됐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