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

20세 ‘완성된 연주자’ 지위 얻어
지휘자 바렌보임과 세기적 만남
다발성 경화증으로 몸 점점 마비
홀로 남겨진 채 42년의 삶 마감


‘우아한 영국 장미’ ‘거장급의 천재 소녀’. 영국에서 태어나 16세에 데뷔해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에게 따라붙던 수식어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덕에 어려서부터 음악을 곁에 두었던 뒤프레는 5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소리를 듣고 첼리스트가 되기로 꿈을 꾼다. 곧바로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10세부터 길드홀 음악원에서 유명한 첼리스트 윌리엄 플리스에게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15세가 되던 해,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살스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해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또 러시아로 떠나 동시대 최고의 첼리스트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하는 등 당대 최고의 거장들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다. 이때 로스트로포비치는 “뒤프레는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첼리스트”라며 그녀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함께 성공을 예언했다. 19세의 어린 나이로 ‘수지아 어워드’(여류 첼리스트 수지아의 이름을 딴 저명한 음악상)를 수상하며 런던 위그모어홀에서의 콘서트를 시작으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세계적인 음반회사 EMI와 리코딩하며 불과 20세에 유망주가 아닌 이미 완성된 첼리스트의 지위를 얻게 된다.

긴 금발 머리에 175㎝의 큰 키인 그녀가 드레스를 휘날리며 무대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이미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21세가 되던 해, 미국 연주에서 그녀는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에 비견되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만남에서였다. 뒤프레는 바렌보임을 위해 청교도에서 유대교로 개종하고 만난 지 1년 만에 이스라엘 ‘통곡의 벽’ 근방에서 기습적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언론의 비유처럼 ‘영국의 장미와 이스라엘 선인장’의 결합은 놀라웠다. 두 사람은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등 무수한 명반을 남기며 절정의 기량을 뿜어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하지만 불행이 찾아왔다. 현을 집는 손의 감각이 점점 무뎌지더니 급기야 무대에서 활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바렌보임은 그녀의 나약함을 지적하며 더 노력할 것을 질타했다. 28세 때 영국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린 주빈 메타와의 ‘엘가 첼로 협주곡’ 협연에서 관객들은 그녀가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주 시작과 함께 첼로는 오케스트라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병명은 다발성 경화증이었다. 몸은 점점 마비되기 시작했고 바렌보임은 전 세계를 돌며 여행하기 바빠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 42세가 되던 해,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곳에서 ‘우아한 영국 장미’ 재클린 뒤프레는 결국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오펜바흐 ‘재클린의 눈물’

독일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는 어느 날 오래된 첼로 악보를 발견한다.

그 악보는 오페레타 작곡가로 유명한 오펜바흐(1819∼1880)의 것이었는데 약 100년간 발표되지 않아 사장돼 있던 것이었다.

곧장 연주해 본 미푸네는 이 곡의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서서히 끓어오르는 슬픔에 매혹됐고, 재클린 뒤프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붙여 헌정하며 세상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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