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여성과 불법적 성관계를 가진 유럽인 남성 및 유럽인 여성과 불법적 성관계를 가진 원주민 남성은 범죄자로 간주하여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인종차별주의정책(아파르트헤이트)으로 악명 높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배덕법. 흑인과 백인의 성관계를 금지한 이 법은 흑백인종결혼금지법과 함께 1985년까지 유지됐다. 그러니까 어떤 시기, 남아공에서 혼혈이란 존재는 ‘범죄’와 함께 삶을 시작했단 걸 의미했다. 아프리카 코사족 엄마와 스위스인 아빠를 둔 저자처럼 말이다. 책은 이 법이 폐지되기 직전, 1984년 남아공에서 태어나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청소년기를 보낸 트레버 노아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지금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이자, 세계 곳곳을 다니는 인기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태어난 게 범죄’라니. 그것도 억울한 인생인데, 자라면서 노아는 인종차별만큼이나 폭력적인 질문, ‘어느 쪽’ 흑인이냐는 것에 봉착한다. 그가 여섯 살 무렵 넬슨 만델라가 석방됐고, 아파르트헤이트는 급속하게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백인들이 사라진 남아공엔 흑인 부족 간의 권력 다툼이 벌어진다. 폭동이 일어나고, 다른 부족 사람을 살해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이웃집은 불에 타고, 새까맣게 탄 시체가 학교 가는 길에 즐비했다. 마약, 절도, 강간, 살인, 납치…. 폭도들이 불타는 타이어로 점령한 거리, 온갖 폭력이 난무했던 고향의 풍경을 어린 시절의 그는 이렇게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악마가 지옥에서 타이어를 태우는 것 같아요.” 폭동이 있을 때마다 이웃집은 숨거나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나 노아의 엄마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폭도들 사이를 지나갔다고. “난 그게 항상 놀라웠다. 현관 앞에서 전쟁이 벌어진대도 상관없었다. 엄마에게는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곳이 있을 뿐이었다.”
책은 어린 노아의 눈에 비친 남아공의 참상을 속도감 있게 묘사하는데, 주를 이루는 건 참혹한 시기에도 건강한 정신세계를 물려준 엄마에 대한 기억이다. 1980∼1990년대 남아공에 대한 날카롭고 생생한 리포트이자,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감사가 가득한 아주 감성적인 회고록인 셈. 웃기는데 웃을 수 없고, 슬픈데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은 토크쇼 진행자이자 코미디언인 노아가 입담 좋게 자신의 과거사를 풀어내기 때문인데, 이건 다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새 아빠가 쏜 총에 맞아 광대뼈가 함몰된 엄마는 엉엉 우는 어린 노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읽고 나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를 떠올릴 독자들이 좀 되지 않을까. 비극을 뛰어넘는 힘이 인간에게 반드시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뭔지 보여준 그 영화 말이다. 저자를 가장 좋아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꼽은 소설가 김중혁은 “고통을 뛰어넘은 웃음은 얼마나 강력한지 삶으로 보여 줬다”며 “우리는 트레버 노아와 함께 상처를 응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