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생존한 전직 대통령 모두 처벌
법 앞 평등과 無權有罪 양면성
文 내로남불에 억울함 더 커져

與 핵심서 일괄 사면論 구체화
대법원장 국정원장들도 대상
어느 쪽이든 조속한 결단 필요


법 앞의 평등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다. 현재 생존한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엄한 처벌을 받고 교도소에 있었거나 지금도 수감 중이니 확고한 법치 국가다. 그러나 한결같이 정권 교체 뒤 그렇게 된다는 점에서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반(反)법치 측면이 더 앞서 보인다. 문재인 정권의 대법원이 이명박(79)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여 원을 선고했다. 박근혜(68)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0년(공천 개입 관련 2년은 별도),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 원이 지난 7월 선고됐다. 검찰 재상고로 확정이 늦춰졌을 뿐이다. 벌금 미납 땐 노역형 3년도 부가된다.

두 전직 대통령 혐의들을 보면 대부분 변명이나 동정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법치 아닌 정치 차원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우선, 흔쾌히 승복하기에는 문 정권의 ‘내로남불’이 도를 넘었다. 진보 성향인 강준만 교수가 ‘사례를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고 개탄했을 정도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느냐, 두고 보자는 반발이 나올 만하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서 간과된 중요한 측면은, 작은 비위조차 목숨을 걸 만큼 부끄러워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후계 세력은 정치적 한(恨)으로 이용했을 뿐, 진짜 유훈은 팽개쳤다.

둘째, 두 전직의 농단 혐의가 ‘개인형’이라면 문 정권 경우는 훨씬 심각한 ‘권력형’이다. 다스 의혹도, 최서원·미르재단 비리도 국정 전반의 문제는 아니다. 국고 손실이나 개인 축재도 많지 않았다. 문 정권 의혹들은 국가 근간과 국익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많다.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조국·윤미향·추미애 사태, 울산시장선거 공작, 라임·옵티머스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적폐 청산 수준으로 수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훤하다.

셋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비교해도 가혹하다. 쿠데타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천문학적 비자금 등의 죄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2000억 원대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전·노 사과와 반성의 선행이 필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민 화합을 위한 무조건 사면’을 결단했다. 그래서 구속 2년 남짓 만에 전격 사면됐다. 두 전직은 이미 전·노 수감 기간을 넘겼다.

넷째, 도덕적 권위도 국정 역량도 존중하기 어려운 문 대통령에게 운명이 맡겨졌다는 사실에도 두 전직은 착잡할 것이다. 민주화 투사이자 피해 당사자였던 양 김의 사면 권 행사는 당당했다. 추징금 완납 없인 사면도 없다는 문 대통령 입장은 또 다른 변수다. 한명숙 전 총리를 만기 출소 때까지 사면(이제는 복권)하지 않은 이유의 하나다. 벌금과 달리 추징금은 형법상 형벌이 아니어서 사면으로 없애줄 수도 없다.

다섯째,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두 전직의 ‘수난’이 정치 발전과 국민 통합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더 심각해졌고, 전임 정권 청산과 정치 보복의 진폭도 되레 커질 조짐이 보인다.

이런 사정과 차기 대선 득표 전략, 그리고 문 대통령의 퇴임 후 대비 등이 작용해 사면은 문 대통령 임기 중에 이뤄질 것이다. 여권 심층부에는 두 전직 대통령은 물론 전직 대법원장과 국정원장들까지 일괄 사면하는 구상도 있다. 하든 않든 문 대통령은 정파 아닌 국가 지도자 입장에서 빨리 결단하는 게 좋다. 내년 봄 차기 경쟁이 막 오르면 사면은 정쟁으로 전락해 뒤죽박죽된다. 야당은 구걸할 필요가 없다. 두 대통령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더는 정치적 소재가 되지 않도록 솔선하는 게 최선이다.

제럴드 포드는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한 ‘선출되지 못한 대통령’이다. 워터게이트 사태로 탄핵 직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을 이어받아 1974년 취임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분열과 증오를 딛고 미래를 시작해야 한다”며 닉슨 사면을 강행했다. “포드를 감옥으로” 구호가 넘쳤고 대선에 패했지만 한 세대 지나 평가는 달라졌다. 케네디재단은 2001년 ‘용감한 사람상’을 수여했고,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당시 저도 반대했지만, 이젠 포드 대통령이 옳았음을 안다”고 고백했다. 많은 역사가와 평론가들도 위대한 결단으로 입장을 바꿨다. 법치와 정치의 근본 목적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이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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