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전선 고지 사수 중 전사한 로버트 리 티몬스 미 육군 대위. 아들 손자 등 3대에 걸쳐 대한민국을 수호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로버트 티몬스 대위 아들은 미8군사령관, 손자는 판문점 최전방서 근무 ‘대를 이어 자결’ 유도발·유신영 부자 ‘11월의 독립운동가’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 전선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로버트 리 티몬스 미국 육군 대위를 11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대를 이어 자결로 항일정신을 일깨운 유도발·유신영 선생 부자(父子)를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로버트 티몬스 대위는 경남 함안의 서북산 전투에서 적과 전투 중 전사했고, 아들인 주한 미 제8군 사령관과 손자인 미 육군 대위까지 3대 걸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서북산 전투는 6·25전쟁 당시 전남을 우회해 경남 진주를 거쳐 마산으로 향하던 적 6사단을 막기 위해 미군 제25사단과 국군이 고지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전투로 19차례나 고지가 바뀌었고, 결국 미군 제25사단 제5연대가 승리함으로써 대구방면에서 적의 압력을 분산시켜 낙동강 방어전선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투다.
로버트 티몬스 대위는 하와이에 주둔하던 미군 25사단 5연대 1대대 중대장으로 활동하다가, 하와이 주둔 부대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파병됐다. 6·25전쟁 당시 로버트 티몬스 대위는 서북산 전투에서 중대장으로서 중대원 100여 명과 함께 고지를 고수하던 중 적의 습격을 받고 부상을 당했고, 후송 중 북한군 기관총 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로버트 티몬스 대위의 시신은 1년 뒤에 발견돼 미 워싱턴 알링턴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로버트 티몬스 대위가 전투에서 전사할 당시 미국에 7세 아들이 있었고, 그의 아들인 리처드 티몬스는 아버지의 전사로 군인의 길을 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리처드 티몬스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주한 미 제8군사령관(중장)으로 한국에 부임, 대한민국을 수호하며 아버지가 전사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이곳 서북산에 육군 39사단은 1995년 12월에 로버트 티몬스 대위를 기리는 추모비를 세웠다.로버트 티몬스의 손자(리처드 티몬스의 아들)도 미 육군 대위로 한국 근무를 자원했고, 1996년부터 1997년까지 1년간 판문점 인근 미 2사단 최전방 초소에서 근무하며, 대한민국 방위를 담당하는 인연을 맺었다.
서애 유성룡의 10대 후손인 유도발 선생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강제 합병되자 일제 지배 아래 차마 살 수 없다며 같은 해 11월 11일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17일째인 11월 27일 선생은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죽음을 맞이해 일제의 강제병합에 대한 강력한 항거로 항일정신을 일깨웠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선대의 가업을 철저히 익혀 항일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던 아들 유신영 선생은 1895년 유인석, 1896년 권세연 등과 함께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 1919년 1월 광무황제(고종)가 서거하고 친일파에 독살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같은 해 3월 3일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정부는 두 분의 공훈을 기려 유도발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유신영 선생에게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