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리영희·신영복 등 16인
생각이 뭔지 일깨워준 정신유산
“‘생각’조차 용인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생각’이 뭔지 알려준 현인들 덕에 신명 나게 책을 만들 수 있었죠. 한마디로 ‘생각과 인문의 축제’였다고 할까…, 그분들의 삶과 정신을 전할 임무가 제게 있다고 믿어요.”
한국 지성사 최전선의 인물들과 인연을 맺으며 44년간 책을 만들어온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새 책 ‘그해 봄날’을 펴냈다. 지난 세월 동안 김 대표가 만난 ‘현인’ 16명의 초상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이들의 말과 글은 우리의 빛나는 정신유산이자 삶의 지혜로서 공유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쓴 것이지만, 내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며 기록자, 전달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했음을 강조했다.
함석헌·김대중·송건호·리영희·윤이상·강원용·안병무·신영복·이우성·김진균·이이화·최영준·이오덕·이광주·박태순·최명희(책에 실린 순서대로). 김 대표가 ‘현인’으로 일컫는 16명은 종교, 역사, 언론, 정치, 문화 분야에 모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그는 책의 서두를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의 경구로 시작했는데, ‘책 만드는 사람’ 김 대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도 함석헌을 꼽았다. “함 선생께선 ‘생각’ 없이 반듯한 삶,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하셨는데, 요즘은 ‘생각의 과잉’ 시대라 문제인 것 같아요. 뉴스를 봐도 그렇고, 인터넷도 그렇고, 폭력적인 말들만 난무하고 말이지….”
김 대표는 ‘시대정신’의 부족이 이러한 상황을 불러왔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으니 정신세계가 풍요로울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에요. 물론 44년 책을 만들고 읽어 온 나도 답은 몰라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건 영원히 답은 없고, 답을 구하는 과정만 존재하는 질문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생각’을 하고, ‘사람’이 돼가죠.”
그는 특별히 이번 책이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소망했다. ‘고단한’ 1980년대를 이끈 지성인들과 지금 한국사회의 주역이 됐고, 또 돼가는 1980년대생들과의 조우가 무척 궁금하다고 했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 전 ‘그들’이 있었음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김 대표는 “한 권의 책은 독자들의 책 읽기로 완성된다.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설렌다”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나의 음악은 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예술혼”이라고 한 윤이상의 말을 빌려 “한국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이 윤이상 선생이 말한 ‘공동선’의 정신을 마음에 품는다면, 더 강력해지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책 속엔 ‘함석헌 전집’을 만들던 30대의 젊은 김 대표 모습도 담겨 있다. 그가 “신명 나게” 책을 만들던 ‘그해 봄날’이다. ‘봄’을 기다리던 엄혹한 시절을 ‘그해 봄날’이라 역설한 제목은, 그러니까 김 대표의 ‘청춘’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책은 16명의 인물로 읽는 현대 한국의 정신사면서 44년 ‘한길’을 걸어온 걸출한 출판인의 삶의 궤적이 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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