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도’(큰 사진)와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이들 작품에서 좀비는 끔찍하기만 한 괴물이 아니라 소외된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기능한다.
영화 ‘반도’(큰 사진)와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이들 작품에서 좀비는 끔찍하기만 한 괴물이 아니라 소외된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기능한다.

■ ‘좀비학’으로 본 좀비신드롬

세상 향한 절망이 부른 ‘좀비 열풍’
“모든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
억압받는 약자·현대인의 자화상 인식

과학문명 비판하는 ‘좀비서사’
코로나 시대, 바이러스 감염 우려
환경파괴로 상처입은 자연의 복수극 공감

혁명적 주체로 부활한 좀비
스크린 밖 현실 속 차별에 당당히 맞서
원하는 건 ‘다른 살’ 아닌 ‘다른 삶’


영화 ‘부산행’ ‘반도’ ‘#살아있다’, 드라마 ‘킹덤’ ‘좀비 탐정’까지 좀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잇따라 흥행하며 ‘좀비 신드롬’을 이끌고 있다. 소수 마니아 장르였던 좀비물은 어떻게 명실상부한 현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부상했을까. 최근 출간된 ‘좀비학’(갈무리)은 좀비를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며 이에 답한다. 문화연구자 김형식이 쓴 이 책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역겹고 끔찍한 괴물”의 간절한 호소에 귀 기울인다. 어쩌면 지금의 당신도 나와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나의 궁핍과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요청이다. 저자는 “좀비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살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이라며 좀비야말로 “다른 세계를 건설할 주체”라는 당당한 ‘좀비 선언’에 이른다. ‘좀비학’에 대한 키워드 분석을 통해 좀비 열풍과 그 이면에 숨은 정치·사회적 의미를 살펴본다.

◇좀비, 소외된 약자이자 현대인의 자화상

이 책은 2010년대 이후 좀비물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을 ‘포스트 좀비 서사’라고 명명한다. 포스트 좀비물은 사회에서 배제된 약자와 소수자를 적극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이전 흐름과 뚜렷이 구분된다. 여기엔 신자유주의가 낳은 불평등,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 청년 세대의 절망이 짙게 배어있다. 연상호 감독이 연이어 선보인 ‘부산행’과 ‘서울역’에서 최초로 좀비가 되는 인물은 각각 가출 소녀와 노숙인이다. 또 ‘서울역’에서 처음으로 군인의 총에 맞아 살해되는 이도 노숙인이다. ‘부산행’의 용석은 어린 수안에게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 아저씨처럼 된다”며 노골적인 혐오의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시선은 가련한 희생자를 연상시키는 ‘처량한 좀비’와 추악한 욕망에 찌든 ‘인간’의 대비로 이어진다. 김성훈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킹덤’ 역시 굶주림에 시달리는 좀비 백성과 권력다툼에만 골몰하는 양반들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이쯤 되면 좀비 서사에서 인간과 괴물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괴물을 인간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인간을 괴물의 위치로 끌어내림으로써” 좀비를 현대인의 자화상이자 억압받는 자의 상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좀비물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그 속에서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며 “좀비는 곧 모든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비가 출몰하는 아비규환은 “현실 자체가 곧 지옥임”을 선언한다.

◇좀비 서사, 과학 문명을 비판하다

최근 좀비 서사는 과학 문명을 통렬히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주로 좀비의 탄생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부산행’에서 좀비는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에서 유출된 바이러스 때문에 생겨난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에서도 인간이 실험실 원숭이에게서 유출된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로 변한다. 이러한 문명 비판적 요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맞은 인류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은 “인간이 자행한 환경파괴로 상처 입은 대자연이 행하는 잔혹한 복수극”이자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환을 요구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썸머’에서 한 남자는 좀비의 습격을 피해 도망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제 생각에는요, 우린 벌 받는 거 같아요. 모든 죄악에 대해서요.”

◇혁명적 주체로 거듭난 좀비

‘좀비학’은 포스트 좀비가 스크린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상 속의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미국 월가에서 벌어진 ‘월가 점령 시위’다. 그때 이미 참여자들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항하며 ‘좀비 분장’을 한 채 시위를 벌였다. 절대적 타자이자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었던 좀비가 ‘포스트 좀비 서사’를 경유해 “탈주를 결행하는 해방의 상징”으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저자는 시위 참여자들이 스스로를 “좀비 영화 속 최후까지 살아남은 1%의 인간이 아니라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허기에 괴로워하며 고통받는 99%의 좀비”라고 인식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어 1대 99로 구분되는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좀비를 자처하는 일은 곧 변혁을 이끄는 주체로 서는 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박제처럼 굳어버린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인간이기보다 역동적이고 솔직한 좀비이기를 원한다. 좀비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살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이다. 좀비가 된다는 것은 차별과 불평등을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좀비는 혁명을 욕망한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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