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 동안 가장 사랑 많은 이의 보호를 받으며 가장 안전한 곳에서 평안함을 누리다가 세상에 나오는데, 꿈결 같은 삶을 하늘에 전하러 다시 돌아갈 때는 왜 올 때처럼 느긋할 수 없는지…. 만남은 항상 등 뒤에 이별을 업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왜 모든 이별은 그렇게 순간적인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 병원에 누워 계실 때 앞에 있던 저의 손을 잡고는 제 손이 찬 걸 걱정하셨죠?. 당신의 아픔은 잊으신 채…. 저는 그 마음을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에 그림자 낄 데 없이 맑았던 날들 속 할머니는 김치를 찢어서 제 밥 위에 올려주곤 하셨죠. 지금,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데 어느새 오랜 어제가 됐습니다. 제가 여섯 살 때 엄마가 일이 있어 미국에 다니러 갔고, 엄마의 부재에 칭얼대며 엄마를 찾았을 제가 안쓰러웠던 당신은 제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자주 만들어 주셨고, 그래서 저는 장염에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결과는 장염으로 남았지만, 그것은 할머니의 사랑이었음을 저는 느낍니다. 엄마를 찾아 울었을 손녀를 보며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지, 그리고 손녀를 달래기 위해 또 얼마나 애를 쓰셨을지 느껴집니다.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제가 올 때마다 할머니는 김치찌개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죠. 할머니 댁에 가면 식탁 위 넓은 냄비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던 김치찌개. 그 맛있는 냄새도 여전히 코앞에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김치찌개는 제겐 다른 김치찌개가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김치찌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언제든 내 앞에 불러낼 수 있는 그 풍경들. 그리고 사진 속, 맑은 미소의 여전한 할머니를 뵈면 부드러운 미소로 맞이해주던 할머니 모습이 지금도 펼쳐집니다. 누구나 그곳으로 돌아가지만 이렇게 짧을 줄 알았다면, 이렇게 순간일 줄 알았다면, 시간과 싸워서라도, 그의 팔이라도, 발꿈치라도 붙잡아 볼 걸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루하리만큼 시간이 길어도 좋으니 붙잡고 붙잡을 걸 그랬습니다.
삶은 순간이라 아주 오래 걸리지 않겠지요. 만나면 우린 본디처럼 그곳에서도 함께할 거예요. 수많은 어제처럼….
할머니, 그곳에서 평안히 계시며 당신의 손녀를 지켜봐 주세요. 당신과의 만남, 짧게만 느껴지고 꿈 같기도 하지만, 손이 차가울 계절이 오면, 아니, 계절과 상관없이 손이 차가워지면 그때 할머니는 제 앞에 계시겠지요. 가장 가까운 목소리로….
할머니, 지금도 당신 음성이 생생합니다. 꿈에서라도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할머니는 계신 장소만 다를 뿐 늘 제 곁에 살아계십니다. 특히 김치를 찢어주던 그때의 모습이 가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할머니, 시계를 돌리고 돌려 당신이 찢어서 밥 위에 얹어주던 그 김치를 저는 지금 먹고 싶습니다.
손녀 이현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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