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사무총장 내고 G20 주도
글로벌 선두에서 외톨이 전락
시대착오적 ‘NL 노선’이 자초
외세 배격과 민족화합 외치며
北 독재와 中 패권 지향은 외면
‘닫힌 민족주의’에는 미래 없다
한국통인 외국 지인이 한국이 대한민국에서 점점 ‘소(小)한민국’이 돼 가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글로벌화의 선두에 서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고 G20 정상회의나 핵(核)안보정상회의를 주도하던 한국이 이제는 바깥세상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행을 포기하고, 중국은 6·25전쟁을 ‘미제 침략에 대항한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역사마저 왜곡한다. 일본은 한국이 배출한 WTO 사무총장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북한과는 잘해 보자고 늘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지만 ‘문전박대’가 일상이다. 한국의 외교 전선에 이상이 생긴 게 확실하다. 주변 강국들과 척을 져 가면서 남북관계 개선에만 골몰하는 외골수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왜 이렇게 한반도 중심주의와 민족화합지상주의에서 못 벗어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1980년대 운동권의 논리, 특히 ‘NL(민족해방)’의 시각에서 곱씹어보면 지금의 외교 노선이 이상할 게 없다.
첫째, 1980년대 운동권은 한국 권위주의 독재가 신식민주의나 종속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이해했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려면 외세의 간섭을 몰아내고 민중의 자주적인 노력으로 민족해방을 이루는 게 첩경이라고 봤다. 미국이 한국을 종속시켜 안보와 자본의 논리로 한국을 침탈하고 있으니, 이를 배격하고 민족해방을 통해 자주역량을 키워 가야 한다고 봤고, 이를 위해서는 같은 민족인 북한과의 민족화합이 관건이었다. 반미와 친북의 연결점은 여기서 탄생했다. 한국 민주화의 길을 외세 배격에서 찾았다. 하지만 북한이 비민주적인 독재체제라는 현실엔 눈감았다. 미국도 한국의 민주화를 바랐다는 사실도 일축했다. 한국이 종속적 상황에서도 선진국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한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둘째, 냉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자 중국을 반(反)패권주의와 비(非)동맹주의의 종주국인 것으로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다. 한국을 세계체제에서 종속적인 주변국으로 보고 미국이 중심이 된 패권세력에 맞서서 약소국과 연대해야 중심세력에 예속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지금의 중국은 더 이상 패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패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오히려 변방의 약소국 취급하면서 회유와 강압과 보복을 섞어 쓰는 나라가 중국이다.
셋째, 1980년대 운동권은 분단 한국의 시발점이 해방 후 3년 동안 생성됐다는 인식을 가졌다. ‘반식민주의’라는 기치 아래서 본 해방 3년간 좌우 대결은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과 친일파의 지배 연합을 통해 분단국가의 원형을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북한의 6·25 남침전쟁이 민족의 참화를 안겼고, 중국의 대규모 참전으로 전쟁이 길어지고 분단이 고착됐다는 사실은 논외시했다. NL식 사고로 보면, 미국엔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고, 북한과 민족화합을 외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반일에 나서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젖어 있지 않은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우선, 외세는 배제·배격 대상이 아니라 적극 활용할 대상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했기에 대한민국은 생존을 담보하고 글로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민족화합과 통일이 최우선 과제인지 냉철히 되새겨봐야 한다. 북한은 비민주적 체제를 바꿀 생각이 없고,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적 공격 무기를 통해 한국의 안보를 여전히 위협한다. 협력 대상이자 경계 대상이다. 끝으로, 중국은 반(反)패권국가이고 일본은 제국주의국가라는 인식은 환상에 가깝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전반의 국제질서관으로 21세기를 재단하는 건 위험하다. 중국이 점차 패권국가로 성장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과도 다층적 협력 관계를 열어 놔야 다른 열강들과 관계 설정에 유리하다.
글로벌 사회와 접점을 줄이는 ‘소한민국’은 21세기 한국의 길이 아니다. ‘닫힌 민족지상주의’ 아닌 ‘열린 국제협력주의’에 미래가 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어가려면 ‘당당하고 강한 나라’ 만들기에 정치인이 앞장서고 국민이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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