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비루하기 짝이 없는 변명” “명분 없는 처사” “천벌 받을 짓”. 민주당이 2015년 김상곤 혁신위의 ‘혁신 당헌 조항’을 뒤집자 나온 정의당과 유인태 전 의원 등의 평가다. ‘당의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치르게 된 선거엔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게 혁신 당헌 조항이다. 이 조항은 정치적 위기에 빠진 당시 문재인 대표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대표적인 당 혁신과 정치개혁 방안이다. 2016년 총선을 향한 승부수였다.

뒤집기는 ‘지금이 털어낼 시간’이라는 판단이다. 지난주 문화일보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내일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여당 후보 선택이 39.7%로, 야당 후보 선택 28.9%’에 앞서고, ‘내년 4월 서울과 부산 보선은 문 정부 임기 후반 안정적인 국정 운영 지원’이라는 의견이 근소하게나마 ‘국정 운영 심판론’에 앞서는 걸 보면 ‘혁신 당헌 뒤집기’는 당연한 현실적 선택이다.

정치 냉소가 걱정이다. ‘말의 가벼움이 정치의 가벼움으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팬덤 정치와 ‘빠’정치는 확산된다. ‘당이 결심하니 그대로 따르는 시민들의 행렬’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결론이다. 민주당의 새 당헌 제1조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으로 바뀌었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그 끝은 정치적 양극화다. 정당의 국민적 요구와 필요에 대한 민감성과 반응성은 약해진다. 유권자 대부분의 생각으로부터 집권당이 점점 멀어지는 거다. 남는 것은 분열과 갈라치기이고 사라지는 것은 국민 통합이다.

‘혁신 당헌 뒤집기’는 최근 지지율 정체 위기에 돌파구가 시급했던 이낙연 대표의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다. ‘이낙연 대세론’이 사라질 위기이기 때문이다. 올 초까지 이 대표가 크게 앞섰던 민주당 지지층과 문 대통령 지지층에서 이 대표의 최근 지지율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거의 대등한 양상으로 변했다. 진보층에선 오히려 이 대표가 이 지사에게 역전당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이제 호남에서만 안정적 우세를 지키는 상황이 됐다. ‘호남당 호남후보’의 한계상황은 최악이다. 비판 일색인 혁신 당헌 뒤집기로 다음 주 조사에서 이 대표는 확실하게 역전당할 수 있다. 특히, 대선의 승부처인 수도권과 중도층이 위험하다. 이렇게 되면 ‘손실이 크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는 명분론이 ‘불가피한 결정’이란 현실론을 덮게 된다.

이 대표는 조급하다. 우선, 내년 서울과 부산 보선에 후보를 내기 위해 전 당원 투표를 ‘알리바이용’으로 활용한 것이 패착의 출발점이다. 6개월 전엔 고급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식상하다. ‘혁신 당헌 뒤집기’는 시대정신을 사라지게 한다. 문화일보 창간기념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여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치개혁’이다. 조사 대상자 24%가 정치개혁을 꼽았고, ‘문 정부 정책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 15%를 더하면 유권자 10명 중 4명이 ‘개혁과 수정’을 요구한다.

이 대표의 ‘혁신 당헌 뒤집기’는 국민적 요구와 반대된다. ‘혁신 당헌 뒤집기’가 정치적 위기의 시작일 수 있는 위험하며 안일한 선택일지 아닐지는 곧 드러난다. ‘이낙연 변화와 차별화’의 행보와 민주당 대선 레이스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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