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90년대, 세계의 중심 런던과 뉴욕에 때아닌 ‘말똥 대위기’가 닥쳤다. 트램과 버스, 크고 작은 마차를 끄는 말 수천 마리가 하루 7~13㎏의 똥을 싸대면서 도로가 말똥 천지가 된 것이다. 수십 년 내로 런던에 2.7m 높이의 말똥이, 뉴욕엔 3층 건물 높이의 말똥이 쌓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책 당국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해결책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1908년 포드자동차가 출시한 모델 T. 모델 T가 출시되면서 빠르게 말을 대체했다. 1917년 뉴욕의 마지막 말 트램이 사라졌다. 신기술은 골치 아픈 말똥 문제를 해결한 동시에 제조업과 운송·유통업에서 엄청난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2. 일본 작가 이스카리 유바(柞刈湯葉)의 과학소설(SF) ‘미래 직업소개소’(이음)는 인간의 일 대부분을 로봇과 기계가 대신하는 미래 사회가 배경이다. 이곳엔 두 부류의 인간이 산다. 직업을 갖고 소득세를 내는 1%의 ‘생산자’와 직업 없이 정부의 생활기본금으로 살아가는 99%의 ‘소비자’. 최저 수준의 생계와 무료함에 분노하는 ‘소비자’들은 걸핏하면 ‘노동권 보장’ ‘생활기본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생산자’의 형편도 대단찮다. 이들의 직업도 자율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냈을 때 책임지는 공무원, 인도의 일식집에 일본풍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용된 얼굴 마담격 점원 정도가 고작이다.
기술혁명이 일자리와 노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다. ‘말똥 대위기’의 기술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약속이라면 ‘미래 직업소개소’의 로봇과 기계는 일자리를 앗아가는 디스토피아의 전령이다.
이처럼 기계화·자동화가 미칠 영향에 대해 극단적인 낙관과 비관이 엇갈려왔지만 최근의 ‘자동화 불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학습을 모방하는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넘어 스스로 데이터를 조합·분석·학습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에 이른 까닭이다. 로봇은 결코 인간을 넘을 수 없다는 ‘인간 우월성 신화’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AI혁명이 만들어낼 미래에 인류는 디스토피아 출현을 피할 수 없을까. 인간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도상(途上)의 나그네’처럼 격변의 시대를 헤쳐가야 할 인류 앞에 던져진 질문이다.
◇AI, 인간을 밀어내나 = AI로 인한 일자리 소멸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에 불을 댕긴 것은 2015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이었다. 미국의 702개 직업군을 조사한 결과 47%의 일이 로봇에 통째로 대체돼 2030년에 이르면 고스란히 사라질 것으로 진단해 미래학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직무 일부가 로봇에 대체될 일자리가 전체의 14%, 업무 형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일자리가 32%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맥킨지앤드컴퍼니는 820개 직종을 분석, 현재 기술로 완전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5%에도 못 미치지만 업무의 3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60%가 넘는다고 밝혔다.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와 패스큐얼 레스트레포 보스턴대 교수는 2018년 노동자 1000명이 일하는 작업장에 자동화 로봇 한 대를 투입하면 기존 일자리 6.2개가 사라지고 임금수준은 0.7%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기술혁명이 더 좋은 삶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이 같은 수치 앞에 무력해진다. ‘이번은 다르다’는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인간을 모방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 해결법을 찾는 AI 때문이다. 대니얼 서스킨드 영국 옥스퍼드대 선임연구원은 최근작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와이즈베리)에서 ‘지적 설계’가 아닌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AI 혁명의 충격을 설명한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인간은 절대자 신의 ‘지적 설계’가 아닌, ‘자연 선택’에 따른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 것에 빗댄 것이다. “오늘날 성능이 가장 뛰어난 시스템은 지능이 뛰어난 인간이 하향식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다…인간의 지능을 전혀 닮지 않은, 의식 없는 상향식 과정에서 비범한 능력이 서서히 생겨날 수 있다.”
2016년 이세돌과의 5차례 대국에서 4차례 승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알파고는 이 같은 예측이 더 이상 SF 속 상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알파고의 두 번째 대국 37수는 특히 충격적이었다. ‘대국 초반에는 돌을 5선에 두지 말라’는, 초보자도 알 만한 경험칙을 깨는 수였다. ‘인간의 수가 아닌 수’를 둔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 우월성 신화의 허망함을 입증했다.
‘인간의 일’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가 아닌 셈이다.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의 설명을 보자. 이들은 증기기관 발명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을 제1의 기계시대,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정보혁명을 제2의 기계시대로 분류한다.
제1의 기계시대에 저임금 육체노동이 기계에 대체됐지만, 제2의 기계시대에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지적이고 정신적 업무마저 대체된다. 실제로 AI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을 잠식하는 한편 예술가와 창작가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이쯤 되면 과연 ‘100% 인간의 일’이란 게 남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같은 비관론에 대한 반론도 강력하다. 낙관론자들의 무기는 역사적 경험이다. AI 혁명이 4차 산업혁명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데서 알 수 있듯, 인류 역사를 뒤흔든 기술혁명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 방직공은 증기 방직기에 밀려났고, 마부는 자동차에, 농부는 트랙터에 밀려난 신기술 피해 집단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생산성 향상과 경제 번영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상상도 못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었다.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AI 비관론을 “비과학적 두려움이자 역사에 대한 무지”라고 일축했다. 영국에서 한때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붉은 깃발법’까지 시행했지만, 마부가 사라진 대신 자동차 제조업, 운수업, 유통업 등에서 훨씬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 사례를 보라는 것이다. “AI는 세상을 끝장낼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응용될 수 있는) ‘범용 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이다. 당장 일부 일자리가 없어질지 몰라도, AI 덕분에 아주 많은 산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그게 뭔지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뿐.”
◇무너지는 산업화 시대의 통념들 = AI 혁명이 일자리와 노동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이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전문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형성된 공감대가 있다. 특정 일자리가 100% 대체되지 않더라도 세부 업무에서 로봇과 기계가 수행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중숙련 노동이 고숙련·저숙련 노동보다 로봇이나 기계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위기가 가시화하는 시점을 정확히 예상하긴 어렵지만, 로봇과 기계에 의한 ‘노동 잠식’이 진행됨에 따라 인간이 직접 수행하는 노동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추세라는 얘기다.
바야흐로 ‘인간 없는 노동’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진단이다. 이런 시대에는 근대 산업화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일자리와 노동에 대한 통념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선 ‘기술 진보가 인간의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것보다 더 많은 새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통념이 깨지고 ‘기술 실업’이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고용이 일상이고 실업은 예외적인 상태’라는 통념이 AI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일찍이 통찰했듯, 기술 실업은 “노동력을 적게 쓸 수단을 발견하는 속도가, 노동력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내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마부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배우고, 화가가 사진 기술을 배우고, 농민이 공장 노동자에게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직공들이 증기 방직기를 때려 부순 러다이트 운동이 보여주듯, 기술 전환 과정은 결코 순탄할 수 없다.
‘마찰적 기술 실업’이라는 표현대로 AI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이제 상시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구조적 기술 실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 형태가 한층 유연해지고 다양해질 가능성도 높다. 이런 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미래를 향한 ‘미리보기 창’과도 같다. 노동자들이 한곳에 모여 똑같이 일하는 ‘나인 투 파이브(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과거지사가 돼 가고 있다. 이경전 교수는 “새벽 배송 서비스는 기존 ‘나인 투 파이브’ 시스템과 거리가 멀지만 새로운 고용과 기회를 창출했다”며 “고용 안정이냐 유연화냐라는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노동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 없는 노동’의 시대는 곧 ‘노동 없는 인간’의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노동은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원천이었다. ‘노동=삶’이라는 등식으로 단순화해도 과하지 않다. 하지만 AI 시대에 이런 통념은 무너지게 됐다. 이제 인간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처지다. ‘권태와의 전쟁’이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는 셈이다.
소설 ‘미래 직업소개소’에서 ‘생생 클린 지구(地區)’를 운영하는 시청의 일화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자동청소기의 순회 청소가 금지된다. 길거리 청소라는 자원봉사를 통해서라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소비자’들을 위한 특별 배려다. 당장 ‘열정 페이’와 격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겐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스킨드가 인용한 마리 야호다의 1930년대 오스트리아 마리엔탈 주민 연구 사례는 권태로움의 위험성이 소설적 상상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한다. 1929년 대공황 여파로 주민 4분의 3이 실직하면서 오로지 실업급여에 의지해 살아가게 되자, 주민들은 갈수록 냉담해지고 남에게 악의를 품는 모습을 보였다.
◇‘노동 없는 인간’, 행복의 조건은? = AI 혁명은 결국 인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전문가들은 “디스토피아의 출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강조한다. 인간 노동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더라도 인간과 AI의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이 힘들고 위험한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됨으로써 예술과 창조적 활동, 사유, 새로운 지식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 주장이 전제로 깔고 있는 인간상은 ‘주도하는 인간’, 즉 객체(客體)가 아닌 주체(主體)형 인간이다. 프랑스 등 15개 창립 회원국으로 출범한 ‘인공지능 글로벌 파트너십(GPAI)’에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박성원 국회 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은 AI 시대에 인간이 의사결정의 주도성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인류 문명은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하고, 다시 새 가설을 세우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AI는 인간에게 ‘내가 다 실험해 봤다’며 정답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가설과 실험의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의사결정을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AI의 노예가 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 서면 뿌연 안개가 좀 걷히는 느낌이 든다. 변화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인간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노동·교육제도의 전면적인 재설계다. 자영업자와 노동자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플랫폼 노동자 문제는 이미 기존 노동 3법 체제와 삐걱대고 있다. 기술 전환의 시대에 필수적인 재교육과 평생교육 시스템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겉돌고 있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는 최근 출간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1’(김영사)에서 “기존의 기업조직과 노동 규범의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노동은 핵심 인력 중심으로 축소되고,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성격이 혼합된 계약 형태가 확산되며 감시·감독, 보안, 사생활 침해는 새로운 차원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 이상 ‘고용이 일상이고 실업이 예외인 시대’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다. 기술 실업의 뉴노멀화는 불평등 심화를 의미한다. 부동산이나 주식, 예금 등 ‘전통 자본’을 가진 사람과 초고임금 지식노동자가 한 줌의 최상류층을 구성하는 반면, 절대다수는 ‘전통 자본’은커녕 ‘인적 자본’의 제값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서스킨드는 “1932년 독일에서 실업률이 24%까지 올라간 상황이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데 한몫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며 불평등 심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박성원 그룹장은 “디지털 전환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들, 특히 AI 충격을 크게 받는 중숙련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기본소득을 줄지 기본자산을 줄지, 준다면 사람들이 주체성을 잃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도록 하기 위해 어느 정도를 줘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꼼꼼히 해야 한다”고 했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인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하루하루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작동하도록 해주는 메인테이너(maintainer)의 존재와 역할”에 주목할 것을 주장했다. 전 교수는 “어떤 기술 시스템도 유지·관리·보수가 필요한데, 이런 일은 결국 사람의 일로 남을 것”이라며 “단 일주일만 멈춰도 우리 모두가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게 되는 게 메인테이너 노동인 만큼, 이를 ‘필수 노동’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시대에 그 중요성이 드러난 돌봄 노동, 가사 노동 등도 메인테이너 노동의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하지 않는 시간’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여가 활동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여가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서스킨드는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원봉사나 돌봄 등으로 공동체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기본소득을 받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선 인류에게 100여 년 전 ‘말똥 대위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될 수 없다. AI 혁명이 해피 엔딩일지 새드 엔딩일지 불분명하지만, 엔딩에 이르는 과정이 상상 이상의 고통과 혼란으로 점철될 개연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소설 ‘미래 직업소개소’의 서두는 멍하니 앉아 기다리기만 하는 무사안일주의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시계가 없어도 아침은 온다. 하지만 시계를 보기 전까지는 아침이 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여명을 느끼며 새날을 맞을 것인가, 이불을 뒤집어쓸 것인가. 따라잡기도 버거운 AI의 발전 속도는 “늦을수록 더 비참할 뿐”이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 일러스트 그린 밥장 작가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다 그림에 빠져 직업을 바꾼 아티스트. 그림을 통해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크고 작은 기업들과의 개성 넘치는 컬래버레이션, TV 광고 등을 진행했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기록하는 여행가이기도 하다. 책 ‘밤의 인문학’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등이 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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