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10代에 슈베르트 ‘마왕’ 감명
음반 들으며 무작정 따라 불러

2차대전 포로 증언 인터뷰서
바리톤 ‘피셔디스카우’ 만나
전업 성악가 권유받은 뒤 데뷔
서정적 음색 예술성 한층 높여


독일의 예술가곡(리트·lied)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영국의 가곡들과는 그 위상이 다르다. 우선 작곡가들만 보더라도 라인업이 화려하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필두로 낭만 음악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슈만, 고전적 낭만주의자 브람스, 후기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볼프 등. 지금까지의 독일 가곡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나 헤르만 프라이,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 페터 슈라이어 등 독일 출신의 성악가들에 의해 그 정통성을 지켜왔다. 그럼 현존하는 리트 가수, 그중 최고의 테너 가수는 여전히 독일인일까?

현재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최고의 평가를 받는 인물은 단연 영국 출신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1964∼)다.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이 독일 가곡의 최정상에 있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이 영국 테너는 음악학교에서 공부한 적이 없다. 악기를 다룰 줄도, 개인 레슨을 받은 적도 없다. 원래 그는 영국의 명문 웨스트민스터 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철학과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인문학자였다. 그는 중학생 시절 독일어 선생님이 괴테의 시 ‘마왕’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들려준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음반에서 들었던 바리톤 피셔디스카우의 음성을 동경하며 독일 가곡의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테너의 음성인 자신의 목소리 톤과는 맞지 않는 바리톤의 음반을 들으며 독학이라고도 할 것 없이 그저 무작정 따라 불렀다고 한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보스트리지는 영국 BBC 방송국의 외부 연구원 자격으로 취재를 위해 독일로 향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포로가 돼 수용소 생활을 했던 독일군의 증언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포로 독일군이 ‘독일 가곡의 교과서’라 불리는 바리톤 ‘피셔디스카우’였다. 피셔디스카우는 독일 가곡과 문학에 대한 보스트리지의 열정과 지성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개인 레슨을 해줬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보스트리지는 피셔디스카우의 적극적인 권유로 전업 성악가로 데뷔한다. 런던의 위그모어홀, 전설의 바리톤 피셔디스카우에게 개인 교습을 받은 29세 인문학자의 데뷔 무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이 공연이 끝난 후 보스트리지는 더 이상 아마추어 성악가가 아니었다.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맑은 미성과 서정적인 음색,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다운 딕션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예술가곡 ‘겨울 나그네’에 대한 그의 문학적 이해와 해석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웠고 깡마른 체구와 새하얀 피부에서 나오는 차갑고 나약한 이미지는 상실과 비애로 가득한 작품의 예술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특히 2016년엔 인문학자로서의 깊이 있는 분석을 토대로 한 가곡집 ‘겨울나그네 해설집’을 출간했다. 겨울 나그네에 담긴 24곡을 작곡가 슈베르트와 노랫말을 쓴 시인 뮐러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를 통해 풀어낸 탁월한 예술서로 평가받고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슈베르트 ‘마왕’

슈베르트의 작품번호 1번으로 1815년 그의 나이 18세에 작곡한 가곡이다. 단숨에 써내려간 작품으로 초연은 그로부터 6년 후인 1821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열렸다. 노랫말은 괴테의 서사시 ‘마왕’에서 가져왔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가곡과 달리 음악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극적인 분위기의 3분짜리 가곡에는 총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자, 생사를 넘나들며 마왕의 환영에 시달리며 고통에 신음하는 아이, 아이를 위로하며 말 달리는 아버지, 달콤하고 음산한 유혹으로 아이를 데려가려는 마왕. 가곡 사에 유례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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