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례 등으로 인해 그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수십 년을 투자해 궤도에 올린 원전 기술과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데 대한 비판도 거셌다. 이런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이른바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논의를 수포로 돌리는 게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였다.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점이 확인됐을 뿐 아니라, 관련 서류의 무단 폐기 등은 탈원전 정책 집행 과정에서의 불법과 비리를 의심케 한다.
이에 대해, 여당의 이낙연 대표가 월성 1호기 관련 검찰의 수사를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양이원영 의원은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이자 정책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야당 시절 대통령의 통치행위 주장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던 민주당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게 놀랍다.
‘통치’라는 개념 자체가 전제군주국가에서 왕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하지만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의 주권과 국가기관의 통치권을 구분하되, 통치권은 권력분립에 의해 입법권·집행권·사법권이 엄격하게 나뉜다. 그런데도 군주의 대권에서 유래된 ‘통치행위’라는 것이 여전히 인정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 때문이다. 즉, 고도의 정치성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곤란한 경우에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통치행위다.
이러한 통치행위는 법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정치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다만, 외국과의 관계에서 나라의 위신 및 국익이 심각하게 문제 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통치행위라고 봄으로써 사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과거 헌법재판소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도입를 위한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해 통치행위라고 보면서도 이에 대한 사법심사를 진행했던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성을 이유로 사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그러므로 탈원전 정책을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는 데는 매우 심각한 오류가 있다. 애초에 통치행위의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치행위는 사법심사를 배제하는 것이지 수사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즉, 통치행위 여부의 판단권은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에 있는 것이지 국회나 검찰에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중요한 정책이기 때문에 수사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주장도 이해할 수 없다. 대선 공약에 대해서는 어떤 불법과 비리가 있더라도 수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4대강 정책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감사원을 동원해서 파헤치고 나서도 다시 검찰을 투입해 수사하지 않았던가?
정말로 통치행위에 대한 오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은 이런 억지 주장을 통해서라도 감춰야 할 무엇이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과거 정권들에서도 그런 일이 적지 않았기에…. 만일 그렇다면, 그 책임은 이 순간을 모면한다고 해도 결코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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