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근 택배기사 한 명이 또다시 숨지면서, 국내에서 배송기사 사망자가 이미 10명을 훌쩍 넘었다. 직업과 노동은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직업과 노동이 오히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택배기사의 사망 원인을 분석해 보면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난다. 우선, 5∼6년 전 분기별 택배물동량이 5억 개 정도이던 것이 매년 10% 이상 성장하면서 이제는 분기별 물량이 10억 개에 근접한다. 하지만 2012년 이후 평균 택배단가는 지난해 처음으로 1.8% 인상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변화가 없다. 현재 택배비 2500원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택시 기본요금 대비 70%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5만 개 이상 대규모 물량에 대해서는 할인 가격을 적용해 2000원 이하에 책정되는데, 이런 가격은 현재 시내버스나 지하철 탑승 요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택배 가격이 이 정도로 낮게 책정되는 것은, 택배업계가 이른바 ‘빅4’로 불리는 CJ대한통운·한진·롯데·로젠과 나머지 10여 개 중소 업체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과당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본사와 지역별로 할당된 대리점들이 제한된 물량을 서로 확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실제로 배송료는 지난 20년간 계속 하락했고, 배송기사들이 받는 수수료 역시 2002년 건당 1200원에서 지난해에는 오히려 800원으로 낮아졌다.

택배기사가 겪는 구조적인 어려움은 또 있다. 택배기사가 물품 운송을 시작하기 위해 자신이 배송할 물품을 찾아 분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전체 근로시간에서 5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의 보상은 실제 배달 건수를 기반으로 책정되므로 분류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사실상 무임금 노동이다.

그런데도 택배기사들이 어려움을 하소연하기 어려운 것은 택배 운송 계약을 지역 대리점들과 체결하는 구조여서 사실상 협상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등록된 택배기사 5만4000명 중 약 20%가 중소 택배사 소속이며, 이들의 협상력은 더욱 낮다. 택배기사들의 상당수가 계약 갱신 여부에 대한 불안감 속에 배송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택배업계의 현실 속에 정부가 택배기사의 건강을 보호하고 택배사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심야 배송 제한 ‘권고’, 주 5일 근무제 확산 ‘유도’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특히, 강제성 없어 실질적인 이행 여부가 개별 택배회사의 선택에 달렸음을 생각하면 걱정스럽다.

미국의 택배산업은 물품 위탁부터 최종 배송까지 전 과정을 회사가 직접 고용한 정규직들이 수행하면서 해당 배송에 대해 회사가 책임을 진다. 물론,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실제 가격 역시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택배기사의 과로를 방지하고 근무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수수료 현실화를 통해 적정 소득을 보장하고, 설비투자를 통해 작업 부담을 경감하며, 대리점이 고용하는 채용 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택배산업에 내재된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용객 모두가 지금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누구도 택배기사가 더는 목숨을 잃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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