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사 인수(引受)를 공식화했다. 산업은행을 통해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 유상증자에 8000억 원을 넣고, 대한항공은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나를 떠안는 방식이다. 운송량 기준 세계 7위권의 항공사가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지만, 현실은 그런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고육책임을 이해하더라도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그런 식으로 연명시킨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등 경쟁력 확보는커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끝없이 혈세와 지원책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선, 서비스 산업의 경쟁 체제 유지에 정면 역행한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 독점 체제를 깨기 위해 설립을 허가한 것이고 순기능을 해왔다. 다시 독점 체제로 돌리고, 특히 대한항공 경영진의 사회적·도덕적 물의를 고려할 때 독점권을 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부실기업끼리의 합병이다. 9·11 테러 이후,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사 합병 흐름이 형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두 항공사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합병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르다. 그런 인수기업들은 훨씬 견실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었고, 시너지 효과도 분명했다. 특히 중공업 경우엔 국내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 경쟁이라는 점에서 국내 독점 문제와 무관하다.

셋째, 뼈를 깎는 자구 노력보다 혈세 투입이 더 중시되는 모양새다. 중복 노선의 해소와 인력 구조조정이 기본인데, 정부는 부정적이다. 산은은 “한진가에 확약을 받았다”며 쐐기를 박을 정도다. 넷째, 민영화에 대한 역주행이다. 산은은 한진칼 지분 10.7%를 보유하게 됐고, 국민연금의 대한항공 지분 8.11%까지 합하면 대한항공은 사실상 준국영기업이 된 셈이다. 다섯째, 대한항공 경영진은 가족 간 경영권 분쟁에 정부를 우군으로 활용하고, 정부는 민간기업 지배를 강화하는 짬짜미 의혹도 있다.

정도(正道)는, 인수 조건을 더 낮추고, 인수자에게 기업 회생의 재량권을 전폭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수 희망자를 다시 물색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심각한 후환을 남기고, 지금의 결정권자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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