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둘째 손자 민수입니다.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할머니’라는 부름이 어색하네요. 마지막 병원에서 뵀을 때 저를 잘 못 알아보시면서도 언제나처럼 저희 걱정만을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앞으로 못 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장례식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저 형식적으로 인사만 드리고 온 그 시간을 내내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그저 처음에는 멍하기만 하다가, 입관 때가 돼서야 그간의 고마움과 죄송함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저에게 할머니는 큰 의미였습니다.
어렸을 적,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는 저희 두 형제를 많이 돌봐 주셨지요. 지금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한 아이의 아빠가 돼 보니, 그때 할머니가 저희 형제에게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엄하셨지만, 그 덕분에 저희 형제가 무탈하게 클 수 있었고, 또 그만큼의 사랑을 저희는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6·25전쟁 때 돌아가시고 힘든 상황에서도 홀로 노점상, 공장 종업원으로 일하시며 아버지를 훌륭하게 키워주신 까닭에 저희도 모자람 없는 유년 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셨을 때는 할머니의 손자로서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특히 조금 무뚝뚝한 형보다 살갑게 구는 저를 더 아껴주셨는데요. 중학교 때 할머니께서 비상금 두신 장소를 알려주시며 “꼭 필요하면 꺼내쓰거라” 하신 게 기억납니다.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이후 오랜만에 고향 집에 가면 이런저런 못다 한 얘기를 제 손을 잡고 들려주셨지요.
하지만 이 못난 손자는 때로 할머니께 짜증을 부리곤 했습니다. 항상 저희 가족의 안녕을 바라며 말씀하시는 걸 알면서도, 걱정 한마디 하실 때면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서운해하시는 걸 알면서도 왜 그랬는지…. 그저 이해하셨기만을 바랍니다.
‘인간이 삶을 통해 남기는 것에 있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할머니를 통해 그 사실을 더욱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또 저와 형을 남기시고, 이제 저희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유산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는지요. 그것이 충분한 것이 되도록 저희 형제가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미처 드리지 못한 감사의 말을 이렇게나마 남깁니다. 할머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둘째 손자 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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