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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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지음│함규진 옮김│와이즈베리

능력있으면 성공한다는 이상
불평등 당연시하게돼 폭력적
트럼프주의·유럽 극우세력도
합당한 불만·모멸감으로 탄생

경쟁서 밀린 약자들 존엄 위해
사회가 ‘조건의 평등’ 추구해야
마이클 샌델이 파헤친 새 화두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패한 힐러리 클린턴은 약 1년 반 뒤인 2018년 대선 결과와 관련해 이런 말을 늘어놨다. “저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생산하는 지역의 3분의 2에서 승리했습니다… 낙관적이고, 다양하고,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장들에서 이겼습니다.” 트럼프에 대해서는 “흑인의 권리를 못마땅해하고” “여성들이 일터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고장들에서 이겼다고 했다.

트럼프의 당선에 낙담했던 미국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은 최근 출간된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에 대한 언짢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민주당은 한때 특권층에 맞서 농민과 노동자의 편에 선 바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능력주의의 시대에,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한 사람은 ‘그래도 나는 미국의 부자와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얻었다’며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샌델이 보기에, 클린턴은 자신이 왜 패배했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주요국의 주류 정당과 정치인들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미국의 트럼프주의와 영국에서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지지, 프랑스·독일 등에서의 극우 정당 득세 등을 꿰뚫는 반동적 행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괴로운 진실은 트럼프가 각종 불안, 고민, 합당한 불만의 결과로 당선됐다는 점이다. 주류 정당들은 그런 불평불만들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2010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년)에 이은 샌델의 8년 만의 새 책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쓰였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양극화와 진영 대결로 점철된 ‘분노의 정치’라는, 주요 국가들이 당면한 최대의 난제를 풀어내기 위해 분노를 유발한 원인을 파고든 것이다.

원제가 ‘능력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인 데서 알 수 있듯, 이 책에서 샌델이 분노 유발자로 지목해 공격하는 대상은 능력주의(meritocracy)다. ‘하면 된다’는 말이 보여주듯,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신분과 부가 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근대 시민혁명의 산물로,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는 귀족주의와 대비된다.

이쯤 되면, 샌델의 작업이 우리가 당연시 하는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실제로 샌델은 재산과 소득 면에서 똑같이 극명한 불평등을 보이는 두 개의 사회(하나는 귀족주의, 나머지는 능력주의 사회)가 있다고 가정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느 쪽이 나은가, 또 당신이라면 어느 쪽에서 살기를 택하겠는가. ‘왜 뻔한 질문을 하는가’ 하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따져 보면 그리 뻔하지 않다. 귀족주의 사회에서는 신분과 재산의 높낮이가 개인 책임이 아니다. 귀족도 자신의 지위가 우연적인 요인으로 결정됐음을 알 수 있고, 하층민 역시 운명을 탓할지언정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반면 능력주의 사회에서 상류층에게 자신의 지위란 ‘재능과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고, 하류층에겐 자신의 비참함은 자업자득일 뿐이다. ‘희망의 사다리’가 될 줄 알았던 능력주의가 “승자에겐 오만을, 패자에겐 굴욕을” 유발하게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선 상류층과 하류층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심리적 거리도 멀어진다. 승자의 경멸과 패자의 분노만 남는다.

지난 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성 시위 모습. 마이클 샌델은 이들을 세계화의 루저나 국수주의자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난 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성 시위 모습. 마이클 샌델은 이들을 세계화의 루저나 국수주의자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트럼프주의,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의 지지, 프랑스·독일 등의 극우 정당 발호 등의 원인이 보다 분명해진다. 이들을 단지 세계화 조류에서 도태된 ‘루저(loser)’나 편협한 국수주의자·인종주의자로 치부해선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모멸감이 극단적 분노의 정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샌델은 최근 미국 노동계급에서 자살, 약물 과용, 알코올성 질환 등 ‘절망 끝의 죽음’이 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 추한 감정과 얽혀 있는 정당한 불만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이는 그러한 불만이 단순히 경제적인 불만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문화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불만은 단지 임금과 일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중’과 관련돼 있기도 하다.”

물론, 귀족주의가 낫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돼 있다”는 얘기다. 샌델은 입시·채용비리 등 부정부패를 없애고 저소득층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겠다는 정치인들의 구상에 회의적이다. 경제적 상황과 부모의 관심 등 이미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공부해서 새 시대에 맞는 재능을 키우라”고 하는 것은 모멸감으로 난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라는 얘기다.

샌델은 우선 세계화의 승자들이 자신의 성공은 상당 부분 운에 기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 프로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도 성공했을 거란 보장이 없는 것처럼, 재능과 노력이 인정받는 데에도 운과 우연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의 존엄성 문제를 정치 어젠다의 중심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 배달원들, 의료 서비스 담당자들 등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준 것처럼, ‘공동선에 대한 기여’라는 관점에서 일의 존엄성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주식 단타 매매처럼 생산성 향상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는 금융 행위에 세금을 부과하고, 거기서 얻은 재원을 저소득층 지원에 써야 한다고 말한다. 또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조건의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대 갈등과 진영 갈등에 부동산 갈등까지 겹친 2020년 말 한국의 상황은 샌델의 능력주의 비판을 남 얘기로 넘기기 어렵게 한다.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며 우선 승자들부터 거들먹거리기를 멈춰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를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420쪽, 1만8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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