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성범죄자는 인스타그램 사용할 수 없다’ 규정… 고영욱·왕기춘·안희정 등 인스타그램 계정 비활성화
네티즌들 폐쇄 안된 다른 유명인들 찾아 신고하기도…“다른 SNS도 제재 강화를” - “지인교류 등 기본권 침해” 찬반 엇갈려
성범죄 전과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유명 인사들의 사적인 ‘온라인 활동’은 어디까지 규제돼야 하는가. 아직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확립에 앞서 ‘물의 인사’의 SNS 계정 강제 폐쇄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인 만큼 시급히 일괄적 기준과 적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성년자 성폭행 및 강제추행 혐의로 실형 복역의 죗값을 치르고 나온 그룹 ‘룰라’ 출신 가수 고영욱은 지난달 인스타그램을 통한 SNS 활동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지난달 12일 인스타그램에 “조심스레 세상과 소통하며 살고자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계정도 강제 폐쇄를 당한 것이다. 고영욱은 같은 달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인스타(그램)도 폐쇄되고,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니까 사실 막막한 상태”라며 “(과거 범행이) 제 잘못인 줄은 알지만, 전과가 있는 사람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로 보여 힘이 좀 빠지더라”고 토로했다.
성범죄 전과로 인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당한 유명인은 고영욱만이 아니다. 집단 성폭행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가수 최종훈과 정준영,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유도선수 출신 왕기춘, 수행비서 성폭행으로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계정도 각각 비활성화됐다. 성범죄에 연루된 다른 유명인들까지 온라인 세계에서 퇴출하라는 네티즌들의 여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법원 판결에 따라 자신의 범행에 책임을 지는 것을 넘어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조치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언론 보도·법원 판결 확인해 차단 = 고영욱 인스타그램 계정에 대한 이번 조치는 성범죄자의 이용을 제한하는 인스타그램과 모기업인 페이스북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인스타그램 측은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는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수 없다”며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의 것으로 보이는 계정을 발견하면 신고해달라”고 밝히고 있다. 신고할 때는 신고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국 성범죄자 등록 리스트 링크 △온라인 뉴스 기사 링크 △법정 문서 링크 중 하나를 포함하게 돼 있다. 인스타그램 측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특정 사용자가 성범죄자임이 확인되면 즉시 계정을 비활성화한다고 설명한다.
또 성범죄자를 제재하는 것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인스타그램에서 적용되는 기준이다. 또 성범죄자만 인스타그램 이용이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국내 인스타그램 관계자는 “성범죄자 관련 규정은 독립적인 규정이라기보단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의 일부”라며 “마약 거래나 성매매 등 다양한 규제가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상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이 발견되면 이용자의 신고와 회사 측의 확인을 거쳐 게시물 삭제나 계정 비활성화 등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해당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만들어 가는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신고 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인공지능(AI) 시스템에 따라 유해 콘텐츠가 자동으로 걸러지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반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아직 계정이 살아 있는 인사들은 네티즌들의 ‘계정 폐쇄 요구’ 타깃이 되기도 한다. 한 밴드그룹의 멤버 A 씨와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았던 예비역 군인 B 씨 등이 이 같은 사례다. A 씨는 과거 미성년 여성을 집으로 불러 세 차례 성관계한 혐의를 받고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또 B 씨도 과거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약식기소돼 1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고, 항소했지만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들의 계정은 현재까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이들은 앞서 차단된 고영욱·정준영·최종훈 등에 비해 혐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경미해, 범죄 전력이 인정되더라도 인스타그램 측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신고를 받으면 같은 절차에 따라 진행되지만, 특정 인물의 신고·차단 여부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극단주의자 등도 이용 불가 = SNS가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해외에선 성범죄자 외에도 차단을 당하는 대상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월 페이스북은 미국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논(QAnon)’을 지지한다고 밝힌 그룹·페이지·인스타그램 계정을 모두 차단한다고 밝혔다. 큐어논은 2017년 미국에서 조직된 이래 ‘미 정계·경제계·연예계의 거물들이 비밀리에 아동 성 착취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백신을 팔려고 일부러 전염시킨 것’ 등의 음모론을 퍼뜨리며 세를 불린 조직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6월엔 극우 반정부주의 세력 ‘부걸루(Boogaloo)’와 관련된 계정 및 그룹·페이지를 차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단 조치가 새로운 갈등으로 비화하는 사례도 적잖다. 지난 8월 태국에서 왕실을 모독하는 게시물이 문제가 되자 페이스북은 일단 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해당 계정을 차단하면서도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성범죄자의 SNS 이용을 막는 주(州) 법률이 위헌이라는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연방대법원은 성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이 SNS에 게시물을 올리는 것을 금지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아동 성범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 교통 위반 범칙금을 면한 뒤 페이스북에 ‘벌금과 재판 비용을 내지 않게 됐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란 글을 올렸다가 문제가 돼 집행유예를 받았고, 연방대법원이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기에 이르렀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SNS에 대한 접근권을 배제하는 것은 수정헌법 1조의 합법적인 행사 참여를 막는 것”이라고 판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플랫폼 안전’ 조치 vs ‘기본권 침해’ 반발 = 성범죄자 등의 이용을 제재하는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둔 이유에 대해 인스타그램 측 관계자는 “보다 안전한 플랫폼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혐의가 확정된 성범죄자의 이용을 제한하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조치는 다른 온라인 플랫폼들과 비교해봐도 수위가 높은 편이다. 유튜브는 음란물·폭력·저작권 침해 등 정책을 위반한 콘텐츠가 발견되면, 주의·1차 경고·2차 경고 등을 부과한다. 90일 안에 세 차례 경고를 받으면 채널이 영구 삭제되고, 다른 계정을 사용하더라도 우회 행위로 간주해 계정이 해지될 수 있다. 그러나 성범죄 전력자에 관한 규정을 따로 마련해놓진 않았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인스타그램처럼 다른 SNS에서도 성범죄자들에 대해 제재가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 대표는 “성범죄자를 비롯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 등의 경우엔 온라인 공간에서 재범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만큼, 사업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이용자들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또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가치지만 누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지도 되돌아봐야 하는데, 이용자들의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공간이 안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미 SNS가 일상 속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주된 도구로 자리 잡은 현 상황에서 이용을 영구 차단하는 조치는 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오손 법률사무소의 오명근 변호사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은 이미 젊은 세대에서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인데, 대중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용 자체를 막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오 변호사는 “전과에 대해 죗값을 치르면 사회로 복귀해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근대법 정신인데, 고영욱 등이 출소한 뒤 SNS를 이용해 지인들과 교류하는 것까지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헌법상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제한할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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