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드높은 하늘을 이고 오늘도 당신과 같이 걷던 동네 산책길을 혼자서 걷고 있어요. 57년 동안 살면서 우리는 여보·당신이라고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어요. 우리의 대명사는 자기였지요. 대답도 없는 자기를 혼자 큰소리로 ‘당신’이라고 불러봅니다.
계절은 어김이 없어 맑은 햇살 아래 자연의 모든 것이 익어가는데 이 세상은 올해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횡포에 너나 할 것 없이 현관만 나서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해요. 바이러스 감염을 피하려고 지난 추석엔 산소에도 못 갔지요. 당신이 좋아하던 녹두 빈대떡과 손자들이 좋아하는 식혜와 음식을 장만해 집에서 간단히 차례를 지냈어요. 산소를 찾는 발길이 뜸해지고 코로나가 한풀 꺾이면 갈게요.
좋은 소식부터 전할게요. 호영이(사위)와 연주(큰딸)가 벌써 회갑을 맞았어요. 주환이(아들)가 매형과 누나 회갑 잔치를 자기 집에서 흡족하게 치러줘서 너무 기뻤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당신은 늘 큰아들이라고 했죠. 당신 말대로 큰아들 노릇을 제대로 했어요. 늘 당신이 우리 집 보배라고 하던 며느리도 정말 기특하지요. 하늘나라에서도 기뻤지요? 벌써 우리 사이에 회갑을 맞는 자녀가 있네요.
연승이(둘째 딸)는 무슨 공부할 것이 그리 많은지 요즘도 밤을 꼴딱 새우며 공부하더니 올해 논문을 5개나 냈다네요. 천생 학자인가 봐요. 자기가 제일 예뻐하던 라경이(막내딸)는 올해 초에 중국에서까지 강의 요청이 있어 준비하던 중 중국에서 먼저 코로나가 확산되는 바람에 못 갔어요. 갔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라경이 대단하지요. 자기 일을 하면서도 강사로 나가던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잖아요.
경식이(외손자)는 군대 갔다 오더니 학기마다 장학금을 타서 기쁨을 주고, 승민이(친손자)는 온 가족의 걱정을 뒤로하고 보란 듯이 대학생이 됐어요. 아 참, 올해 결혼한 진아(외손녀)는 아기를 가졌대요. 데이비드(외손녀 남편)도 잘생기고 진아도 예쁘장하니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기는 또 얼마나 예쁠까요? 중국에 유학 가 있던 승진이(친손녀)는 올 초 설날 때 한국에 들어왔다가 코로나 때문에 중국 학교를 그만두고 학년 손해 없이 한국 중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도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자기를 잘 따르던 막내 건우(친손자)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연주·호영이 병원이랑 주환이 회사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큰 지장은 없나 봐요.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주세요. 당신의 집사람을 위해서도 기도 잊지 마세요. 또 기쁜 소식 전할 때까지 안녕!!
당신의 자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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