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세계를 모험하다│스테파노 만쿠소 지음│임희연 옮김│더숲

‘개척자’나 ‘정복자’라고 하면 보통은 서부극의 총잡이나 전쟁 영웅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의 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온 대륙을 누빈 식물이야말로 지구의 개척자이자 ‘베테랑 전투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녹색 생명체가 어떻게 원자폭탄 투하 같은 대참사를 견뎌냈는지, 또 어떻게 ‘극지방의 빙하에서 불같이 뜨거운 사막, 대양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까지’ 정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모음집이다. 저자의 전작 ‘식물 혁명’이 식물의 생존 전략을 통해 인류 위기의 해법을 모색했다면, 이 책은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에 따르면 식물 번식을 돕는 요소는 물·바람·공기·인간·동물 등이다. 17세기 시칠리아 활화산에서 태어난 ‘세네시오 스쿠알리더스’는 ‘시골뜨기에서 옥스퍼드의 유명인사로’ 거듭난 꽃이다. 국화과 식물인 이 꽃은 영국의 한 식물학자에 의해 옥스퍼드로 옮겨졌는데, 특유의 향기에 반한 시민들 덕분에 한 세기 만에 도시 전역을 뒤덮었다. 옥스퍼드를 넘어 영국 내 다른 지역까지 확산하도록 날개를 달아준 건 산업혁명이었다. 도시 곳곳에 철도가 깔리면서 민들레 홀씨처럼 생긴 씨앗이 ‘히치하이킹’을 하듯 열차 탑승객의 몸에 달라붙거나, 달리는 기차가 일으키는 돌풍을 타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퍼져나갔다. 원산지와는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도 꽃을 피운 건 지역 자생종과 교배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움’ 없이도 건재한 본연의 생존력에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스웨덴 ‘가문비나무’의 수령은 무려 9560년에 이르고, 일본 히로시마(廣島)엔 원자폭탄 투하에도 살아남은 피폭 나무 ‘히바쿠주모쿠’가 있다. 일부 식물은 ‘씨앗 운반’을 직접 책임지는 혁신 전략을 취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열대 지방에 사는 ‘후라 크레피탄스’가 대표적이다. 이 식물은 번식 때 요란한 폭발음을 내며 자신의 씨앗을 40m 거리까지 튕겨 나가게 한다. 저자는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수명이 짧은 인간을 대신해 역사의 중대사와 길흉화복을 몸소 체험한 산증인이 나무”라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들뜬 어조로 식물의 생명력을 예찬하지만, 후반부에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를 슬쩍 꼬집기도 한다. 보통 환경 분야 도서들이 ‘인간중심주의’를 질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한발 나아가 동·식물에 위계를 두는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멸종 위기종’을 거론할 때면 동물에 먼저 관심을 두기 일쑤고, 깊은 땅속에서 수만 년 전의 씨앗이 발견돼도 동물만큼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말한다. 식물은 어떤 유대 관계도 맺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철저한 사회적 유기체라고. 동물보다 덜 발달한 존재도, 더 단순한 존재도 아니라고. 204쪽, 1만6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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