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 · 글로벌 · 소통
이재용, 전자중심 사업재편… 초일류 넘어 초격차 강조… 구내식당서 직원들과 인증샷
정의선, IT기업 같은 車회사… 세계 ‘수소 생태계’ 선도… 결재판 없애고 이메일로 보고
구광모, 발탁·순혈주의 타파… AI해외석학 잇달아 영입… 직급 상관없이 실무자와 토론
지난 10월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고, 앞서 같은 달 14일 정몽구 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국내 대기업들은 3∼4세 경영 체제에 본격 돌입했다. 3세 경영인인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50) 현대차그룹 회장, 4세인 구광모(42) LG그룹 회장 등 4050세대 대기업 총수들은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주의적이며 과감한 변혁을 주도하고, 외국 기업과의 협업이나 해외 인재 영입 등 글로벌 경영에도 적극적이다. 이처럼 미래를 선도하는 강한 리더십을 선보이면서도, 조직 문화에서는 탈권위적이고 합리적인 소통을 중시하는 게 3∼4세 총수들의 특징이다.
◇실용적 혁신 리더십 =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에 ‘이재용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이 부회장이 그리는 ‘뉴 삼성’의 청사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 온 지난 6년을 살펴보면 그의 리더십 특징이 드러난다.
이 부회장은 부친의 ‘초일류 정신’을 넘어 ‘초격차 기술’을 강조하며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어 미래 먹거리로 △인공지능(AI) △5세대(G) 이동통신 △바이오 △전장 등 4대 신산업을 키우고 있다. 그는 2014년 말부터 석유화학과 방산 등 사업부문을 한화와 롯데에 잇따라 매각하고 전자와 금융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다. 이 부회장은 또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도 지난 5월부터 반도체 투자에 18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잘못된 과거’와는 과감하게 결별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선언한 대로 무노조 경영도 폐기했다.
정 회장은 10월 14일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혁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만 잘 만들면 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구조 개편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소신이다.
정 회장은 향후 현대차그룹의 핵심 사업 분야로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제시하고 있다.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던 지난해 9월 UAM 사업부를 신설하고, 나사(미 항공우주국) 항공연구총괄본부 본부장 출신 신재원 박사를 담당 부사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 정 회장은 수소연료전지 기술력을 자동차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겠다고 밝혔고, 커넥티드카·AI·자율주행 기술 등을 결합한 ‘스마트 시티’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종 산업과의 개방적 협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취임 3년 차를 맞은 구 회장의 리더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실용주의’다. 구 회장은 40대 총수답게 실용주의와 진정성을 바탕으로 더 젊고 빠른 ‘뉴 LG’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그룹 전반에 ‘혁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구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 스타일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는 호칭이다. 그룹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구 회장은 2018년 6월 29일 LG그룹 지주사인 ㈜LG의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직후 임직원들에게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회장이라는 직위보다 지주회사 대표라는 직책이 갖는 의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겸손한 자세로 전문경영인들과 소통하며 그룹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일화라는 게 LG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구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 철학은 LG그룹 인사 전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이와 출신의 벽을 과감하게 허문 LG그룹은 2018년 역대 최대인 134명의 신규 임원을 발탁한 데 이어, 지난해 연말인사에서도 당시 34세였던 심미진 LG생활건강 상무를 포함해 106명을 새롭게 임용했다. LG그룹은 지난달 26일 신규 임원 124명을 포함한 2021년 임원인사를 단행했는데, 45세 이하 신규 임원이 24명에 달했다. 최연소 임원은 LG생활건강 중국디지털사업부문장인 지혜경(여·37) 상무이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980년대생 신임 임원을 3명 발탁했다.
또 LG그룹은 연말 임원 인사와는 별도로 사업에 필요한 전문 역량 강화 차원에서 연중 수시로 다양한 영역의 외부 인재를 영입해 순혈주의를 탈피하고 있다. LG그룹은 실제 올 한 해 동안에만 총 23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한국은 좁다…글로벌 리더십 = 이 부회장은 2016년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80억 달러에 인수해 전장사업의 터전을 닦았다. 지난 10월엔 반도체 미세공정을 위해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생산라인 장비 확보를 위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을 찾아갔다.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위한 미세공정 기술 확보는 이 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현안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AI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AI 분야 세계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세바스천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직접 영입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국내를 넘어 세계 수소 산업 생태계 확장을 선도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수소 관련 글로벌 기업 CEO 협의체인 ‘수소위원회’ 공동 회장에 올랐다. 지난해 6월 주요 20개국(G20) 에너지환경장관회의 연설을 통해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에 수소경제 사회 구현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고, 올해 1월 수소위원회 CEO 총회에서는 수소사회 구현을 위한 3대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자율주행차, 전기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개발을 위해 해외 전문 기업들과의 협업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오는 2023년 자율주행 4단계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지난 3월 미국 앱티브와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을 설립했다.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기아차는 동남아시아의 그랩, 인도의 올라, 이스라엘 반도체 칩셋 전문기업 오토톡스, 스위스의 홀로그램 증강현실(AR) 개발 업체 웨이레이, AI 음성인식 분야의 미국 사운드하운드, 중국 바이두 등 세계 각국의 기업들과 전방위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구 회장 체제에서 LG전자는 지난 5월 캐나다 이동통신사 1위 업체 ‘벨’의 AI팀을 이끌었던 케빈 페레이라 박사를 토론토 AI 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AI 분야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컴퓨터공학부 조셉 림 교수를 영입하고, 그에게 최고기술책임자(CTO) 부문 산하 인공지능연구소의 영상지능 연구를 맡기는 등 미래 성장 분야의 세계적 인재 영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합리적 소통 리더십 = 이 부회장은 평소 ‘동행(同行)’ 철학을 강조한다. 자사 사업장을 점검할 때 구내식당에 나타나 직원들과 ‘인증샷’을 남기거나, “나 때문에 엘리베이터 잡아두지 말라”고 말한다는 일화 등은 그의 탈권위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 부회장은 회사 내부를 넘어 시민사회와의 소통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주주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이 부회장의 동행 철학은 인재·상생·사회 난제 해결 등 3가지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다. 얼마 전 삼성은 2018년 8월 ‘총 180조 원 투자와 4만 명 고용’을 발표한 지 2년 만에 성과를 공개했다.
정 회장은 소통·자율·책임을 중시하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한다. 해외 권역별 자율경영 체제를 도입, 현장 중심 의사결정 체계를 강화했다. 국내에선 복장·점심시간 자율화를 통해 개인의 자율성을 높였고, 결재판을 없애고 이메일 등 비대면 보고를 확대했다. 자율좌석제도 시범 운영 중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불가능했지만, 수석부회장 신분이던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임직원 약 1200명이 참가하는 타운홀 미팅을 열기도 했다.
구 회장 취임 후 LG그룹에는 직원들과의 소통이나 회의 방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구 회장은 사업 현장을 방문할 때 논의 주제에 따라 해당 부문 경영자와 실무 책임자 등 꼭 필요한 인원만 함께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면뿐만 아니라 문자나 이메일 등 상황에 따라 가장 편한 방식으로 임직원들과 소통하며, 직급에 상관없이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분기별로 400여 명이 한꺼번에 모여 개최하던 임원 세미나도 ‘LG포럼’이라는 100명 미만 규모의 월례 포럼 형태로 바꿨다. 사업보고회 역시 급변하는 환경에 따라 전략 논의를 수시로 진행하면서, 기존 연중 두 차례에서 하반기 한 차례로 줄였다.
■ 대기업 총수 3人의 인맥
이재용, 저커버그 등 풍부한 해외 네트워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인맥은 국내외 정·재계와 학계에 폭넓게 포진해 있다. 정계에서는 ‘민간외교관’ 수준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과 인연이 깊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실권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자이드 나흐얀 왕세제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생산거점을 두고 있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베트남의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도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 재계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도 두껍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팀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이 주요 인맥이다. 가문 대 가문으로는 스웨덴 최대 기업 발렌베리그룹 오너 일가와의 인연이 오래 이어져 오고 있다.
정의선, 印尼 대통령, 현대차에 투자 요청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인맥은 외국 대통령부터 축구선수까지 다채롭다. 정 회장은 2018년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국빈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정 회장은 지난해 7월 동남아시아 시장 점검차 나선 출장에서 인도네시아를 찾아 조코위 대통령과 재차 면담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정 회장에게 직접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 투자를 요청하며 “한국에 갈 때 현대차를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차례 만남의 결실로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브카시시(市) 델타마스 공단에 완성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정 회장은 지난달 1일 축구 스타 이동국의 은퇴 경기로 치러진 프로축구 K리그1 전북 현대의 시즌 최종전을 직접 관전하고, 은퇴식에도 참석해 감사패와 2021년형 미니밴을 선물했다.
구광모, 訪韓 사우디 왕세자와 일대일 면담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취임 3년 차 젊은 총수답게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인맥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6월 방한 중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다. 당시 면담에서 구 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는 가전 분야 파트너십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 회장은 같은 해 7월에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나 4차 산업 관련 사업 현안과 협력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주요 그룹 총수들과 잇달아 회동하며 접점을 늘려가는 모습이다. 구 회장은 지난달 5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국내 4대 그룹 수장들의 이날 회동은 지난 9월 이후 2개월 만이다.
김성훈·권도경·장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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