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조정위도 유명무실
“소수 권리 보장방안 필요”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처리를 금지하기 위해 지난 2012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이 21대 국회에서 다수당에 의해 완전히 무력화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이 거대 여당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쟁점 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카드를 꺼낼 전망이지만, 사실상 거대 여당을 막을 방법은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는 단서로 인해 180석을 점한 범여권이 마음만 먹으면 토론을 종결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도입된 안건조정위원회도 무력화된 모습을 보였다. 안건조정위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에 대해 해당 상임위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구성되며,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만 안건 처리가 가능하게 돼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범여권인 열린민주당의 협조로 이를 손쉽게 넘겼다.

전문가들은 국회선진화법 도입 과정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 도출이 아닌 숫자의 논리로 밀어붙일 수 있도록 한 것이 야당엔 패착이었다고 비판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국회선진화법은 다수의 횡포라는 부작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법”이라며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입법 독주, 일당 독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무력화하고 밀어붙이는 다수당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후민·김현아 기자
이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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