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모(1933~2017)

차가운 겨울바람이 일렁인다. 가슴속까지 파고든다. 한반도 남쪽 끝자락의 섬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내가 태어난 곳이다. 고향에는 아버지의 향기가 곳곳에서 따뜻한 정과 사랑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고향 산자락 얼어붙은 땅속 야생화처럼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는 3년 전 늦가을, 가을걷이를 모두 끝내고 머나먼 여행을 떠나셨다.

겨울인데도 고향집 햇살은 포근하다. 그 햇살에 스며든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린다. 내게 아버지의 사랑은 저 햇살처럼 환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미남에 키가 훤칠하셨던 아버지. 선량한 표정으로 짓는 미소는 아들인 내게도 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선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하셨다. 술을 드셔도 언제나 자식들 앞에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항상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늘 최고의 보람이 자식들이 남에게 칭찬을 받을 때라고 말씀하셨다.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유년시절부터 아버지를 엄한 존재로 느껴본 적이 없다. 자식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언성을 높이거나 매를 들지 않으셨다. 외려 불러놓고 대화를 하셨다. 대화를 하더라도 당신께서는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 나는 중학교 시절까지만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로 나와 유학생활을 했다. 방학 때 고향에 가면 아버지는 늘 밭에 나가 농사에 열중하고 계셨다. 일손을 거들고자 곁에 다가가면 넌지시 미소를 지어 보이실 뿐이었다.

대학 때 학내에서 시위주동자로 찍혀 수배를 당했을 때 아들을 나무라기보다는 지원군 역할을 해주셨다. 4학년 졸업을 앞둔 1988년 8월, 판문점에서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하는 통일선봉대로 활동하다 연행돼 서울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 잡혀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을 뒤로 미룬 채 서울까지 올라와 경찰에게 호통을 치셨다. 그 기개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도량이 바다와 같이 깊고 넓으신 분이었다. 지나친 욕심을 갖지 않고 항상 검소한 생활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칭송을 받으셨고, 아버지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자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당신의 병원비만큼은 손수 준비해 오셨다. 운명하시기 3일 전 이른 아침, 아버지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그때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오랫동안 내 휴대전화에는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다. 이제는 그 번호를 지워야 할 것 같다.

밭둑길을 힘겹게 걸으시던 아버지 모습은 영원히 가버렸는데 밭두렁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겨울바람에 한들거린다. 고향집에 가면 동네 어귀까지 나와 환하게 반기시던 아버지. 산소 곳곳에 피었다가 시든 꽃들이 머지않아 다가올 봄소식과 함께 꽃바람의 향기를 건네주며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아들 김병화(전 경기 광명시 언론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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