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든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털모자를 쓰고 커다란 벙어리장갑을 꼈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곳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몹시도 추운 곳이다. 아직도 그 얼굴들에선 내무반 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들은 내가 장교 시절, 그렇게 아꼈던 소대원들이다. 문득 그때가 그립다. 시간은 1980년. 장소는 강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최전방부대. 나는 81밀리 박격포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그해 여름, 광주 육군보병학교에서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친 나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춘천에 도착했다. 군용버스에 올라 북으로 달리고 달렸다. 저녁 늦은 시간이 돼서야 사단 사령부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자고 다시 군용차에 탑승해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또다시 북으로 달렸다. 끝없이 달렸다. 땡볕에서 상의를 벗고 작업하는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중동부 전선 철책부대였다. 전 지역이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155마일 철책이 펼쳐져 있었다. 가는 곳마다 지뢰 표시가 있었고, 밤이면 북쪽 확성기에서 선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곡을 통해 들려오는 그 소리는 참으로 묘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그대로다. 그런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두 번 보냈다.
대성산 기슭에서 대대 전투력 측정이 있던 날, 우리 소대원들은 사단 참모들이 보는 앞에서 박격포 포탄을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시켰다. 그때 기뻐하던 대대장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연대 전술 훈련에서도 우리 소대는 그 무거운 박격포의 포열, 포다리, 포판을 메고 장거리 행군을 했는데 한 명의 낙오자도 없었다. 그리고 중요 임무였던 마현리 13초소 근무도 소대원들의 일치단결로 성공적으로 마쳤다. 위문 공연차 초소를 지나던 조용필 씨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것이 기억난다. ‘단발머리’가 한창 유행할 때였다.
전우들의 얼굴을 한 명씩 떠올려본다. 이제택 병장, 내가 정말 아꼈던 전우였는데 그만 수색대로 차출돼 갔다. 제대하면 충주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유성곤 병장, 군 생활 내내 내 곁에서 도와주었던 믿음직한 전우였다. 대구 출신인데 축구를 잘했다. 김옥경 병장, 따뜻한 심성을 가진 전우로 소대원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다. 제대 후엔 양복점을 하겠다고 했다. 강대성 병장, 장난기가 많은 전우였는데 요리를 잘했다. 제대 후에는 레스토랑을 차리겠다고 했다. 이도영 병장, 손재주가 많았고 특히 겨울철 땔감을 잘해왔다.
전우들과 함께 피땀 흘리며 지켰던 그곳들이 이젠 그리운 이름이 됐다. ‘대성산, 삼천봉, 적근산, 천불산, 마현리, 말고개, 수피령 고개, 육단리, 다목리, 사창리, 와수리’. 내가 복무했던 부대는 15사단 39연대 3대대 12중대 1소대다. 대성산을 함께 지켰던 전우들아, 정말 보고 싶다. 제택아, 성곤아, 옥경아, 대성아, 도영아∼~.
백형찬(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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