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기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본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전 세계 어디든 연결이 된다”며 “젊은이들이 한국 안에서 ‘우리가 최고’라고 할 게 아니라 넓은 세상을 향한 식견으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주인기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본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전 세계 어디든 연결이 된다”며 “젊은이들이 한국 안에서 ‘우리가 최고’라고 할 게 아니라 넓은 세상을 향한 식견으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한국인 최초 IFAC 회장 지낸 주인기 연세대 명예교수

IFAC, 전세계 회계사 대표기구
재임기간 동안 별도 기구 두고
회계감사 기준 제정 독립 추진
그간 BIS 등서 요구해왔던 것

회계감사, 사유물 아닌 공공재
아무리 제도 정교히 만들어도
윤리의식 없인 反시장적 흘러

정의기억연대 사태서도 보듯
비영리부문 회계 투명성 높여야


“회계 제도를 잘 운영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 회계 제도의 개혁만큼이나 더 중요한 사실은 운용하는 사람들의 윤리 의식입니다. 지속적인 개선과 높은 윤리 의식이 회계 제도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양대 축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회계사연맹(IFAC) 회장을 맡아 최근 임기를 마친 주인기(71) 연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인터뷰 내내 회계사들의 윤리 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역대 IFAC 회장 가운데 아시아 지역 국가 출신 회장으로는 필리핀, 일본 등에 이어 세 번째였다고 한다. IFAC는 전 세계 공인회계사들을 대표하는 국제기구로 131개국 180여 개 회계 전문단체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비중 있는 국제기구 혹은 단체 수장을 한국인이 종종 맡게 되면서 2018년 당시 주 명예교수의 IFAC 회장 취임은 그 자리가 가진 위상에 비해 주목을 덜 받은 측면이 있다. 회계분야가 가진 고도의 전문성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라는 사회 인식도 일부 작용했다. 하지만 글로벌 회계업계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한국 회계감사 수준에 대한 국제적 평가 등을 고려하면 주 명예교수의 IFAC 회장 역임은 한국 회계 분야의 큰 성취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니다.

지난 8일 문화일보 본사 회의실에서 주 명예교수 인터뷰를 진행했다. 훤칠한 키와 꼿꼿한 자세, 정정한 발걸음, 맑은 목소리, 몸에 배어 있는 온화한 미소 등은 그를 10년은 더 젊게 보이게끔 했다. 주저 없이 본인의 소신을 피력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주장에는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 내 생각만 옳다는 독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선 IFAC 회장을 지낸 소회부터 들어봤다.

―IFAC 회장을 무사히 마쳤는데 소감은.

“IFAC는 전 세계 공인회계사들을 대표하는 기구로 대외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일은 주로 국제회계감사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는 직접 만들었는데 현재는 독립적으로 회계감사기준위원회를 설치, 그 일을 전담시키고 대신 재무·행정적인 도움을 주는 식으로 업무를 나눴다. 현재 진행 중이라고 보면 된다. 회계 관련 윤리 기준도 IFAC에서 주관해 제정하는데 이 역시 독립시키려 하고 있다. 교육 기준도 IFAC에서 만든다.”

―회계감사기준을 각국에 강제할 수 있는가.

“각국 주권이 있어 강제할 순 없다. 다만 IFAC에서 제시하는 회계감사기준을 따라가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회계감사의 질(質)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강제는 아니지만 대부분 국가가 자신의 필요로 도입해 사용한다. IFAC의 또 하나의 미션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 회계 후진국들을 돕는 일이다. 회계 제도를 잘 만들고 운영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장 재임 기간 중 어떤 성과를 냈는가.

“별도의 독립기구를 둬 회계감사 기준과 윤리 기준 제정 시스템을 독립시키는 작업을 추진했다. 아직 울타리 안에 있는데 더 독립시켜야 한다. 이해 상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증권거래소연합, 국제결제은행(BIS) 등 글로벌 회계 관련 감독기구는 우리에 회계감사 기준 제정 업무를 독립시킬 것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해 상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선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업을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외부 시선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회장으로 취임한 뒤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독립 작업을 추진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그 과정에서 회계사들의 반발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IFAC가 앞장서서 회계사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데 왜 맞서지는 않고 감독기구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기만 하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겸손함을 요구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 보이지만 외부 시선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회계사들이 실질적으로 손해 보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설득했다. 이런 설득이 먹혔는지 현재는 독립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IFAC 회장직을 지낸 게 한국에도 도움이 됐나.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려고 회장직에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에 봉사할 때가 돼 기꺼이 회장직을 수행한 것이다. 가서 한국에 좋은 것을 하자, 이런 태도는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다. 우리가 공공이익을 추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면 외국인들도 귀를 기울이지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씨알도 안 먹힌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공공이익 추구와 봉사를 강조한 주 명예교수의 말과 달리 역설적이게도 그의 회장 재임 중 한국 회계업계는 IFAC 진출 러시를 이뤘다. 최달 삼일회계법인 교육파트장은 국제회계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고 김성남 EY한영회계법인 회계사는 국제윤리기준위원회 위원이 됐다. 안영균 한국공인회계사회 상근연구부회장은 국제회계사연맹 이사 자리에 올랐다. 주 명예교수가 겉과 속이 다른 의뭉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고지식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올곧은 마음을 품고 직을 수행하니 의도치 않은 결실을 보게 됐다는 게 더 적절한 듯하다.

―일련의 회계 개혁에 대한 평가는.

“회계감사는 공공재다. 사유물이 아니다. 언론 보도와 마찬가지로 공시되면 모두가 사용한다. 감사 보고서도 그렇고. 이런 공공재에는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대처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규제고 또 하나는 윤리의식이다. 우리 회계 개혁은 관 주도로 이뤄졌다. 대우조선해양 사건을 비롯한 대형 분식 회계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이뤄진 국가별 회계 관련 평가에서 꼴찌를 하는 등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회계개혁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회계개혁 핵심인 주기적 지정제도 등에 대해 국내외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IMD 평가에서도 이전에 비해 15단계 상승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덧붙여 회계사들의 윤리 의식이 한층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엔론 사태 이후 사베인즈 옥슬리 법이 제정됐다. 미국 정부가 회계 부정과 관련해 보다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도 체크앤드밸런스 원칙은 지켜졌다. 최선을 다해 제도를 만들었겠지만 모든 제도에는 허점이 있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과정에서 정책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전문가집단의 사회봉사 의식, 즉 윤리 의식이 메워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계개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회계사들의 윤리 의식이 받쳐주지 않으면 반(反)시장적인 제도로 흐르기 쉽다. 실제로 제도 때문에 잘못되는 경우는 없다. 결국 운용하는 사람의 탐욕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의기억연대 사건을 계기로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공공적 차원으로서 비영리 부문 회계 투명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적으로 지지한다. 기업의 경우 시장에서 소비자, 주주 등으로부터 매일 평가받는다. 그런데 비영리기관은 평가를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전적으로 명성과 평판을 기초로 해 움직이기 때문에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안 된다. 외국처럼 비영리기관이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스스로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모든 것을 법으로 강제하면 늘 부작용이 따른다. 공인회계사회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유회경·김보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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