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파구 못찾는 코로나 대응
의료진 노력·국민적 희생으로 이룬 K-방역… 정부, 자화자찬에 빠져 3차 대확산 초래
‘정치 방역’서 인지·조정·통제 바탕 ‘정책 방역’으로 전환 시급… 백신 확보 최우선해야
◇방심 끝에 닥친 위기
문 대통령은 확진자 수가 1000명을 오르내리자 국민에게 일상의 모임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적극 실천을 요청한 데 이어 정부 방역 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는 재확산 방지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다급한 모습은 며칠 전 점검회의 당시 태도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며 여유를 보이던 모습은 사라지고 근심과 걱정으로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정부의 백신 확보책 미비 등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 급락과 긍정평가 최저치 경신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대응을 K-방역이라 부르며 국내외에 세계적인 방역 성공 사례로 자랑했다. 지난 12일에 개최된 한·아세안정상회의에서도 K-방역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마케팅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한 반면, 우리나라는 물량 확보조차 불확실한 상황에 맞닥트리게 됐다. 이에 국민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최근 겨울 한파와 함께 확진자 수가 급속히 증가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대처는 효과적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의료진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국민의 자발적 동참 덕택이라고 해야 한다. 과거 정책 성과와 실패의 축적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난 40여 년간 발전시켜온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위기상황에 잘 작동한 덕분도 있다. 지금까지의 방역 성과를 특정 정권이 독점할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 방역의 필수 요건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재해 대응을 분석한 루이스 컴포트 미국 피츠버그대 공공국제대학원 교수는 자연재해·재난 등과 같은 위기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인지(Cognition)·조정(Coordination)·통제(Control)의 3C를 제시했다. 한국 역시 그간 실패의 경험을 포함한 축적된 ‘정책 성과’를 바탕으로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과 국민의 희생심 속에 3C를 효과적으로 일궈왔다.
먼저 ‘인지’. 한국은 코로나 확산 초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효과적으로 대응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1월 20일 첫 코로나19 감염자를 확진하고 발 빠르게 대응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중국을 제외하고는 태국과 함께 가장 빠른 확진 판정이었다. 한국의 확진이 빨랐던 이유는 사스와 메르스 등 과거 감염병 사태의 정책 실패를 경험하고 이에 따라 공항과 병원 등에 감염병 탐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했기 때문이다.
또 과거 세월호 침몰사고와 메르스 전염 사태를 겪으면서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중앙재해대책본부로 이어지는 위기관리 체제를 정비해 위기 상황에서 지자체와 정책부처 간의 조정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이런 효과적인 ‘조정’은 위기관리의 두 번째 필요조건이다. 직면한 위험을 회피하고 위기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요소는 ‘통제’다. 우리 국민은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관공서에서 업무를 볼 때도 일일이 동선을 기록해야 하는 등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범당하는 어려움을 참아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이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세워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는 일도 있었지만, 국민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치적 자유의 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감수했다.
컴포트 교수의 위기관리 요소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자원 동원 능력’이다. 신속한 검사와 결과 확인을 위해 전국의 진단 실험실이 동원됐고 수많은 의료진이 코로나 방역에 뛰어들었는데, 이런 자원 동원은 근본적으로 지난 1977년 도입돼 2000년대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된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치 방역에서 정책 방역으로
2020년 한 해 동안 국민은 코로나19 재난에 맞서 함께 희생하고 고생하고 인내하면서 버텨왔다. 코로나19로 경제 한파를 맞으며 힘들게 버티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수고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 코로나 3차 확산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자영업자 계층의 정부에 대한 부정평가가 62%를 돌파하는 등 다른 계층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난 이유다(한국갤럽). 문재인 정부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찬사를 독점하고 청와대가 K-방역 홍보에 열을 올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K-방역 자화자찬에 빠진 정부의 ‘정치 방역’ 논리는 정책적 오만으로 연결되고 이는 곧 겨울철 코로나 재확산에 대한 무능과 무대책으로 이어졌다. K-방역 홍보에만 골몰한 끝에 확진자 1000명 시대가 되면서 ‘물리적 방역’은 물론 ‘심리적 방역’마저 무너졌다. 경제는 심리인데, 코로나 대응 정책이 바이러스도 못 잡고 경제도 망가뜨리는 양상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다 한들 잘못이라 탓할 수 없다.
코로나 재확산을 막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정책적 자만과 정치 방역 논리, 그리고 코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적 단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일반 국민, 의료진, 공공 부문 종사자들이 힘을 합쳐 위기 상황에 대응함으로써 바이러스와 심리의 동시 방역으로 코로나를 잡고 민생 회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
바이러스 방역과 심리적 방역, 이 두 개의 방역을 현실화하기 위해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백신 확보다. 접종은 신중하더라도 확보는 신속하게 하는 백신 정책의 원칙을 갖고 민·관이 전방위로 뛰는 올코트 프레싱을 벌여야 한다. 이와 함께 경제적 타격이 가장 큰 영세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으로 민생 안정을 도모하는 것도 정책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요컨대 정부는 K-방역이라는 자화자찬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정책 방역으로 일대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자만 끝에 닥친 위기 : 문재인 정부, 국민적 희생과 동참 위에 이뤄진 ‘K-방역’ 성과를 독점. 정치적 자만은 더 큰 위기를 막지 못함.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 급락과 긍정평가 최저치 경신으로 확인됨.
코로나 방역의 필수 요소들 : 재해·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필요 요소는 인지(Cognition)·조정(Coordination)·통제(Control) 등 3C. 정부는 오랜 정책 성과와 실패의 축적 위에서 중장기 대책을 세워 코로나 방역을 효과적으로 끌고 가야.
정치 방역에서 정책 방역으로 : K-방역 자화자찬에 빠진 정부는 겨울철 코로나 대확산을 준비하지 못하고 무능과 무대책으로 일관. 홍보성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백신 확보를 위해 올코트 프레싱을 벌이는 등 정책 방역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임.
■ 용어 설명
코로나 ‘백신’에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 미국에서 긴급 사용을 승인한 화이자, 1회만 접종해도 되는 얀센, 실용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모더나 등이 있음.
‘K-방역’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을 지칭하는 말. 정부가 이를 적극 홍보하고 온 세계에 수출하고자 하지만 최근 확진자 폭증, 백신 미확보 등과 맞물려 위기론에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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