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한방병원의 정신적 토대 만든 ‘독립운동가’신홍균 선생

신홍균(사진) 선생은 지난 11월 17일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국가보훈처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그는 여러 독립군 전투에 참전해 항일무장투쟁을 벌이고 독립운동가 양성에도 힘썼다.

신 선생은 1881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나 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한의사로 생업을 이어가던 중 1911년 30세 때 가족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중국 봉천성 장백현 17도구(한국의 면·리에 해당)로 거처를 옮겼다. 소유하던 토지도 종손에게 전부 위탁하고 떠나 그곳에서 의술을 펼치며 살았다. 신 선생은 1916년 여름 장백현 17도구를 찾은 독립운동가 김중건을 만나 조력자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독립운동을 시작하면서 신흘이라는 가명도 사용한다. 1920년 5월 신 선생은 김중건을 도와 200여 명의 청년과 독립군 대진단을 창설한다. 당시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은 1920년 10월부터 보복적 성격의 간도학살을 자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중건이 일본군에 체포되면서 대진단이 와해될 위기에 처한다.

신 선생은 1925년 김중건이 돌아올 때까지 대진단을 지켜내고 독립운동가들을 양성했다. 이후 1933년 조선공산군 이광의 부대가 김중건과 마찰 끝에 그를 처형하자, 신 선생은 김중건의 마지막 지시에 따라 부하들을 이끌고 한국독립군에 합류해 대전자령 전투에 참전했다. 이때 한국독립군은 일본군을 습격하기 위해 6월 28∼29일쯤 적의 통과 예상지점인 대전자령 서쪽 계곡에 매복해 있었으나, 28일 폭우가 내리면서 일본군의 출발이 지체됐다. 독립군은 빗물이 허리까지 고인 참호 속에서 폭우와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이때 신 선생이 묘안을 내 작전지역 인근에 자생하는 검은 버섯을 따다가 소금에 절여 독립군의 식량으로 사용했다. 약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한의사의 강점을 활용한 것이다.

신 선생이 제공한 버섯 덕에 독립군은 긴 인내 끝에 6월 30일 일본군 본대가 대전자령에 다다르자 일제히 공격을 가해 대승을 거뒀다. 이 일화는 당시 전투에 함께 참가했던 백강 조경한(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국무위원) 선생의 회고록에도 담겼다.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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