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선정 2020 ‘올해의 책’

인간의 근본적 문제 고민한
‘죽은 자의 집 청소’최다추천

코로나 대응 ‘바이러스와…’
성폭력 고발 ‘김지은입니다’ 등
사회적 의제 다룬 책만 7권

인문분야 ‘사상의 최전선’과
소설 ‘시선으로부터’도 꼽혀


문화일보가 18일 출판·평론가들의 조언을 받아 2020년 한 해를 빛낸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한 결과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한 ‘죽은 자의 집 청소’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삶과 노동의 불안정성 확대,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여전한 폭력, 부동산값 폭등과 빈부 격차 확대 등 당면 현안과 갈등을 반영하듯, 사회적 의제를 다룬 책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올해의 책’ 선정은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사 대표와 편집자, 출판평론가, 다독가 등 52명에게 올해 출간된 국내 저자의 책 5권씩을 추천받는 식으로 이뤄졌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5월 말 출간돼 6개월여가 지난 현재 8만5000부가량 팔렸다. 특수청소업자로 일해 온 신인 작가 김완의 생생한 경험에 바탕 한 이 책은 사회적 의제와 당사자성이라는 올해 출판계의 트렌드에 잘 부합한다. 출판인 23명의 추천을 받았다. 책을 펴낸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현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질 정도로 빈틈없는 문장, 세상을 떠난 사람과 그분의 삶에 대한 애정이 담긴 사색의 깊이 등이 이 책을 더 주목받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죽음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생각하게 한 코로나19 사태, 1인 가구 증가 등 사회적인 분위기와 잘 부합한 것도 관심을 끈 요인”이라고 했다.

이 책을 포함해 유력 정치인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입니다’, 텔레그램 n번방 등을 통한 성 착취를 추적한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불평등 실태를 분석한 ‘세습 중산층 사회’,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고발한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진단한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진보 진영 내부의 비판을 담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등 사회적 의제를 다룬 책들이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렸다. 선정 대상 10권 가운데 7권에 달한다. 이 가운데 ‘죽은 자의 집 청소’와 ‘김지은입니다’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 등은 사태의 당사자가 썼다. 최종 10권에는 못 들었지만 ‘임계장 이야기’와 ‘그냥, 사람’ ‘난치의 상상력’ 등 당사자성을 갖춘 책들도 복수의 추천을 받았다.

인문 분야에서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 ‘옛 그림으로 본 서울’ ‘공부란 무엇인가’ ‘인삼의 세계사’ 등이, 과학 분야에서는 ‘튀김의 발견’ ‘물질의 물리학’ 등이 추천을 받았으나 ‘올해의 책’ 10권에는 들지 못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코로나19라는 압도적 이슈 외에도 부동산, 검찰 개혁, 공정, 불평등 등을 놓고 갈등이 격렬해지다 보니 사회 분야 책이 강세를 보였다”며 “‘모두가 미디어’인 상황에서 당사자성은 앞으로 점점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 분야에서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가 14명에게 추천을 받아 전체 순위 2위에 올랐다. 6월 초 출간된 이 책은 올해 안에 10만 부 돌파 기념 에디션이 출간될 정도로 판매 면에서도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책을 펴낸 김소영 문학동네 대표는 “존재했으나 기록되지 않았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계보를 이야기한 게 큰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 ‘연년세세’도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렸고, ‘천 개의 파랑’ ‘화이트 호스’ ‘떠도는 땅’ 등도 복수의 추천을 받는 등 여성 서사 강세는 여전했다. 남성 작가 작품 중에서는 ‘일곱 해의 마지막’ ‘철도원 삼대’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등이 복수의 추천을 받았다.

‘올해의 책’ 선정 과정에서 특이하게도 ‘절대강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출판인 44명이 참여했던 지난해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29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22표를 얻었다. 그러나 올해엔 10표를 넘긴 책이 5권에 불과한 반면 1표 이상 받은 책이 76권에 달했다.


■ 선정에 참여한 출판인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의모(작가) 고세규(김영사 대표)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이사) 김기중(더숲 대표) 김성신(출판평론가) 김소영(문학동네 대표) 김수진(푸른숲 부사장) 김영준(열린책들 편집이사) 김인호(바다출판사 대표) 김종길(글담 대표) 김종수(한울 대표) 김태희(사계절 총괄팀장) 김한청(다른출판사 대표) 김현종(메디치미디어 대표) 김현지(현대문학 단행본팀장)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노의성(사이언스북스 주간) 류지호(불광미디어 대표) 박래선(에이도스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 박윤우(부키 대표) 박재환(에코리브르 대표) 박혜숙(푸른역사 대표) 안희곤(사월의책 대표) 양원석(RHK 대표) 염종선(창비 편집이사) 유정연(흐름출판 대표) 이갑수(궁리 대표) 이광호(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권우(출판평론가) 이혜진(해냄 주간) 임병삼(갈라파고스 대표) 장동석(출판평론가) 장미희(출판인)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소연(세종서적 주간)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조미현(현암사 대표) 조성웅(유유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주일우(이음 대표) 최준영(책고집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하지현(정신과 의사) 한미화 (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한승혜(작가) 홍성욱(‘서울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황서현(휴머니스트 편집주간)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 지음│김영사

고독사나 자살, 사고 등 다양한 이유로 죽은 사람의 마지막 자리를 치우는 게 저자의 일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생계 수단만은 아니다. 죽은 자의 집은 곪고 병든 우리 사회의 단면이자 희망과 좌절, 소박한 기쁨과 행복, 외로움 등 고인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현장이다. 벽에 걸린 사진, 서가에 꽂힌 책, 각종 요금 체납을 알리는 통지서와 독촉장 등을 통해 고인과 대화를 하는 듯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은 읽는 이를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이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이끈다.


시선으로부터,│정세랑 지음│문학동네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폭력과 억압은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이에 순종하지 않고 ‘다르게’ 살았던 심시선과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아 남들과 ‘다른’ 가족 형태를 일궈 나가는 후손들의 이야기.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소설 속 여성 삼대가 보여주는 ‘새로운’ 풍경은 흥미롭고, 또 후련하다. 6·25전쟁 후 하와이로 이주해 인생을 개척했고, 자신의 사랑에 충실했고, 사랑과 폭력을 구분할 줄 알았으며, 싸우는 걸 주저하지 않았던 시선은 그 자체로 20세기를 견딘 모든 여성에게 바치는 헌사가 된다.


김지은입니다│김지은 지음│봄알람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투(Me Too) 운동’에 기름을 부은 저자의 세상을 향한 두 번째 고발이다. 2018년 3월 첫 번째 고발이 재판 승소로 끝났음에도 마타도어와 억측, 오해가 여전하기에 다시 한 번 나섰다. 저자는 “결코 주저앉지 않고, 굳건히 살고 살아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고통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외침에 많은 독자가 책 구매와 지지라는 행위로 응답했다.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지음│생각의힘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이라는 문제를 20대, 즉 1990년대생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세습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10%의 ‘1등 시민’과 나머지 90% ‘2등 시민’ 사이에 ‘넘사벽’의 초격차가 생겼다고 진단한다. 세습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20대는 분노는커녕 극도의 무기력증에 빠졌다. 이런 체제가 고착화한 근본 원인은 20대의 부모 세대인 86세대의 격차에 있다. 저자는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없이는 모든 과실이 ‘세습 중산층 20대’에게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추적단 불꽃 지음│이봄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대화방 ‘n번방 사건’과 관련한 최초 신고자이자 보도자인 ‘추적단 불꽃’이 쓴 책. ‘김지은입니다’와 함께 올해 ‘정치적 행위로서의 책 읽기’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책에는 ‘불’과 ‘단’이라는 필명의 기자 지망생들이 취업용 스펙을 쌓기 위해 불법 촬영물을 취재하다 n번방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면서 추적자이자 활동가로 변모해 간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이들의 추적은 주범들의 잇단 검거와 성범죄 형량 강화 등 실질적 변화로 이어졌다.


연년세세│황정은 지음│창비

1946년생 이순일 씨와 두 딸의 이야기. 현재와 과거, 기억과 상념 등이 얽히고설킨 4편의 연작 소설은 가족, 사회, 국가 등 ‘나’를 이루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외조부 묘를 없애기로 한 순일이 강원 철원으로 떠나며 시작하는 소설은 고교 졸업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큰딸의 일터에 머물다가, 고모네 식모살이를 했던 이순일의 과거를 소환하기도 한다. 고통과 슬픔을 덕지덕지 입고 ‘지금’에 이른 세 사람은 어떻게 이 굴레를 벗을지 질문하며, ‘다가오는 것’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이재갑·강양구 지음│생각의힘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의 역사를 되짚는 것부터 감염병 대응의 과학적 원리, 강요된 비대면 상황에 대한 철학적 고찰 등 다양한 차원의 책들이 쏟아졌다. 에볼라와 사스, 메르스 등 감염병 현장에서 활동해 온 이재갑 한림대 의대 교수와 과학·보건의료 전문기자의 대담을 기록한 이 책은 현장형 정책 대안과 실행 전략을 제시했다. 전면적 봉쇄를 걱정해야 할 코로나19 상황은 ‘K-방역’의 실체에 대해 “임기응변과 ‘피’ ‘땀’일 뿐”이라던 이들의 진단을 입증하는 듯하다.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박정훈 지음│빨간소금

4년간 맥도날드, 우버이츠, 쿠팡이츠, 동네 배달대행, 배민라이더스를 두루 경험한 배달원이자 현직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저자가 온몸으로 체험한 ‘플랫폼 자본주의’의 실체를 고발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모든 책임과 위험부담을 떠안게 된 ‘1인 사장’ 또는 ‘플랫폼 노동자’는 죽고 다치고 병들어 간다. 저자는 ‘혁신’이라는 치장에 눈멀지 말고, 플랫폼에 의해 해체된 노동 관련 법 조항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되돌아볼 것을 촉구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강양구 외 지음│천년의상상

‘조국 백서’에 대항하는 ‘조국 흑서’ 격으로 기획된 이 책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전면적이고 적나라한 비판이 쏟아지는 시발점이 됐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5인의 공동 저자가 문재인 정부 지지에서 공개 반대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컸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 제목을 책 제목으로 채택한 데서 알 수 있듯, 저자들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어떻게 배반당했는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21세기 사상의 최전선│김환석 외 지음│이성과감성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매주 문화일보에 연재된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시리즈를 묶어낸 책이다. 브뤼노 라투르부터 도나 해러웨이, 프리드리히 키틀러, 캉탱 메이야수, 그레이엄 하먼, 그레구아르 샤마유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대표적 사상가 25명의 최신 사상과 새로운 사유의 틀을 신진 연구자들의 시선으로 정리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 시리즈는 애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코로나19 시대’를 예고하는, 또 이를 넘어서기 위한 최전선의 인문학 담론을 집대성한 기획이 됐다.

북리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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