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안전문화 조성 없이는 기업의 안전문화 조성도 어렵다.’ 상식이다. 기업의 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정부의 예방 역량과 올바른 방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부는 재해 예방 기반 조성 같은 책무는 소홀히 한 채 기업에만 책임을 씌운다. ‘책임의 외주화’다. 이를 위해 곧잘 쓰는 수법이 감성에 호소하는 ‘엄벌주의’다. 그것도 지킬 수 없는 규제를 들이대며.
정부는 재해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엄벌이라는 손쉬운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마치 엄벌만이 정의인 듯 생각하는 이념이 횡행한다. 사실, 엄벌주의는 미봉적 해결 수단으로, 권위주의 정부에서 자주 사용되는 접근이다. 뭔가 하고 있다는 정치적 제스처를 통해 실질적인 문제를 가리는 알리바이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가 면피에 급급해 엄벌주의의 선봉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어떤 조직에서 지킬 수 없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는 구성원을 징계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조직이 책임 떠넘기기에 혈안이라고 아우성일 것이다. 조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난도 쇄도할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 움직임에서 이런 비유를 떠올리는 사람은 단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최근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정국을 보면, 2018년 12월 문제투성이의 ‘김용균법’을 놓고 연출된 상황의 데자뷔가 느껴진다. 그때도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김용균법’이라는 레토릭을 통해 마치 산재 문제를 크게 개선하는 입법인 양 호도하면서 번갯불에 콩 볶듯 통과시켰다. 개악됐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중대재해를 줄이긴커녕 증가시키고 있는데도 입법에 앞장선 이들은 아무런 반성이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처벌을 대폭 강화해 놓고 또다시 이 정도로는 부족하니 문명국에서는 유례없는 입법으로 모든 기업과 경영자를 범법자로 삼겠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나중엔 살인죄로 처벌하자고 나올 것이다.
처벌만 강화하면 진정 산재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면 중국,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이미 재해 예방 선진국이 돼 있어야 한다. 이젠 솔직해져야 한다. 산업 안전의 수준은 예방 시스템 여하에 달렸다는 상식을 외면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른단 말인가. 전자라면 무책임하고 후자라면 무능한 것이다.
과연 중대재해법을 지킬 수 있는 기업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처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단언컨대 어느 기업도 이 법을 다 준수할 수 없다.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을 악법이라고 한다. 좋은 명분만 내걸면 헌법 원칙은 내팽개치고 위법적 수단도 정당화되는 것인가. 목적만 정당하면 애먼 사람이 처벌돼도 무방한가. 그러면서 법치주의,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정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정부는 엉성한 김용균법과 고비용 저효과 예방 시스템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툭하면 엄벌에 의존하거나 인력을 늘리는 식의 보여주기에만 골몰한다. 중대재해법이 ‘제2의 김용균법’이 돼선 안 된다.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눈감은 생색내기 입법은 재해로 희생된 분들에게도 몹쓸 일이다. 득표하는 데는 도움될지 모르나, ‘정권은 짧고 역사적 평가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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